한경일은 돌연 잠적한 이유에 대해 "3집 때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는데, 회사 사장님이 용돈을 주시더니 '일주일 정도 숨어있어라'고 하시더라"면서 "왜 그런지 얘기를 들어봤더니 조금 더 주목 받기 위해서 '소속사 하고의 트러블 때문에 잠적을 했다'고 작전을 짰다"고 털어놨답니다.
결국 소속사의 잘못된 노이즈 마케킹으로 오해가 쌓여갔다. 결국 해명의 기회없이 한 순간에 인기가 추락, 결국 방송에서 사라지게 됐다.
한경일은 "방송 관계자분들은 가수 한경일이라는 사람이 무책임하다고 낙인을 찍으셨다"면서 "방송도 못하고 방송도 잡히지 않고 외부에서 행사도 들어오지 않았다. 2004년을 마지막으로 전성기가 끝났다"고 했습니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가수가 된 한경일. '내 삶의 반'으로 전성기를 보냈지만, 나아지지 않은 형편. 한경일은 "수입이 정말 단 1원도 없었다. '집이 너무 힘들다'면서 이렇게 사정을 하는데도 소속사에서 돈 없다고 못 준다더라"며 "요즘 말로 하면 노예 계약이다"고 털어놨다. 그는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유일하게 있던 반지하 집을 팔고 모든 빚을 다 갚고 길거리에 나앉은 상태로 어쩔 수 없이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큰 누나네 집으로 부모님과 제가 얹혀 살았다"고 했다.
6년 전 치매,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어머니. 한경일은 "진단을 받을 정도의 상태가 됐을 때는 심각한 상태에서 발견을 했더라"면서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효도도 못 시켜 드렸고, 성공한 모습도 못 보여드렸는데 저를 세상에서 제일 많이 응원해주신 엄마가 그걸 더 이상 기다려 주실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막막하고 너무 슬펐다"고 털어놨답니다.
한경일은 결혼식 축가를 위해 이동했다. 한경일은 "한동안 방황도 많이 했다. 술에 많이 의지하고 살았던 적도 몇 년 있다. 인생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할 정도로 남 보기 부끄럽게"라면서 "좀 자포자기 하면서 살았던 시기가 있다"고 했다.
가수 활동을 멈춘 이후 축가, 보컬 레슨 등으로 생계를 유지, 수입이 없었던 그가 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노래였습니다.
한경일은 "안 가본 무대가 없다. 주변에서 돈 줄테니까 노래하라고 하면 안 가본데가 없다"면서 "정말 가리지 않고 노래를 했고 돈이 적어도 노래를 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기술이자 유일한 무기인 노래를 가지고 어떻게든 살아가야했다"고 했다.
8년 동안 매달 한곡씩 꾸준히 발표해온 한경일. 그는 "음원을 디지털 싱글로 내는 일을 안 하면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게 된다. 그러면 발표하는 곡도 없고 옛날에 활동 좀 했었던 가수로만 남는다"면서 "그럼 저는 사라지는거다. 존재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했다.
한경일은 "굉장히 유명해지지 않아도 좋다. 다만, 제가 계속 노래를 할 수 있도록 명분이 계속 생겼으면 좋겠다"면서 "그리고 저도 용기를 내서 좀 과감하게 많은 변신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그리고 더 기쁘게 활동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밝혔답니다.
- 프로필 이력 경력은?
본명 이름은? 박재한 (Park Jae-han) 출생 나이 1980년 3월 19일 (42세)
"괘씸한 사람으로 방송가에 찍혀"..'내 삶의 반' 한경일이 사라진 이유 - 2022. 6. 8
노래 '내 삶의 반'으로 유명한 가수 한경일(42)이 근황을 공개했다.
지난 7일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에 공개된 영상에서는 2002년 데뷔해 히트곡 '내 삶의 반'을 남기고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인기를 끌었던 한경일이 출연했답니다.
그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프로그램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더라. 제가 2년 반 정도 고정 출연을 했다"며 "그때 얼굴을 많이 알렸다. '한밤의 TV연예'라는 프로그램에서는 리포터를 맡았다"고 회상했습니다.
한경일은 어느샌가 방송가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는 "왕성하게 활동하다 인사도 없이 갑자기 떠난 것처럼 됐다"며 "소속사가 노이즈 마케팅을 하려고 했다. '소속사가 건강이 안 좋은 한경일에게 스케줄 강행군을 시켜서 불화가 생겼다. 결국 한경일이 잠적했다'는 스토리였다"고 설명했답니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한경일은 "제가 소속사 은혜도 모르고 이름 좀 알렸다고 방송을 펑크 낸 괘씸한 사람으로 방송가에서 찍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방송가에 오가는 이야기였다"며 "매니저가 일일이 해명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이 저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방송에 출연할 수가 없었다"고 자취를 감췄던 이유를 밝혔답니다.
일자리를 잃은 한경일은 활동 당시에도 수익 정산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데뷔했을 때부터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며 "'내 삶의 반'이 얼마나 돈으로 환산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몇 년간 눈코 뜰 새 없이 일했는 데도 그랬다"고 털어놨답니다.
한경일은 방송 제의가 들어와도 자신이 처한 상황이 창피해서 모두 거절할 만큼 어렵게 지냈다고 했다. 그는 "(방송에서) 집에 찾아오겠다더라. 작은 집에 월세로 부모님까지 셋이 살고 있었다. 바퀴벌레도 나왔다. 이 꼴을 보여줘서 득 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찌질하고 처참하게 살고 있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안겼다.
이어 "어머니까지 파킨슨 병, 알츠하이머에 걸리셨다. 좁은 집에서 활동을 못 해서 더 나빠지는 것 같았다"며 "처음으로 큰 빚을 내서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근황을 전했답니다.
어린 시절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는 그는 "돈 벌 수 있겠다 싶어서 가수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라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생각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잘 나갈 때 돈 많이 벌어놓고 흥청망청 쓰다가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더라"고 자신을 둘러싼 오해를 해명했다.
현재까지 축가를 부르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는 한경일은 "수입이 없다 보니까 스케줄이 맞으면 축가를 부르러 간다. 개인 레슨하는 보컬 학원은 유지만 하는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한 달에 한 번씩 음원을 발표하지만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그것마저 안 하면 저는 아무도 모르게 묻혀 사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내 삶의 반'을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 삶의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 가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서 기쁘다. 노래를 통해 여러분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마음에 드는 노래를 제가 부른다면 많이 사랑해달라"고 인사를 전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