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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감독 토마스 투헬 아내 국적 부인 나이 프로필 이혼 여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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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헬의 이혼과 여자친구

토마스 투헬 첼시 감독(48)이 이혼 승인 수일 만에 새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영국 매체 더선은 2022년 6월 27일(현지시간) 투헬이 13세 연하의 매력적인 여성과 다시 사랑에 빠졌다고 보도했답니다.

투헬의 마음을 빼앗은 여인은 올해 35세의 나탈리 맥스로, 비즈니스 우먼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라고 더선은 전했다.

더선에 따르면, 투헬은 맥스를 편안한 사르데냐로 데려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답니다.

목격자들은 "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손을 잡고 정말 행복해 보였다"고 했다.

이들은 1박에 20,000파운드짜리 개인 별장에 머물며 일몰 보트 여행을 즐긴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한 휴가객은 "그들은 수영을 하고 해변에서 더위를 식히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카프레라 섬으로 가는 배를 탔다"고 말했다.

둘의 사랑은 투헬이 전 아내 시시와의 이혼이 런던 고등법원에서 승인된 지 며칠 만에 이루어졌다고 더선은 전했답니다.

투헬과 시시는 지난 4월에 13년 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화해할 수 없는 차이를 이유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답니다.

- 프로필 이력 경력

나이 출생
1973년 8월 29일 (48세)
고향 출생지
서독 바이에른주 귄츠부르크 군 크룸바흐

신체 키
키 190cm / 체중 72kg

소속
선수
TSV 크룸바흐 (1979~1988 / 유스)
FC 아우크스부르크 (1988~1992 / 유스)
슈투트가르트 키커스 (1992~1994)
SSV 울름 1846 (1994~1998)

감독
FC 아우크스부르크 유스 (2006)
FC 아우크스부르크 II (2007~2008)
FSV 마인츠 05 (2009~2014)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5~2017)
파리 생제르맹 FC (2018~2020)
첼시 FC (2021~ )

코치
VfB 슈투트가르트 유스 (2000~2005)
FC 아우크스부르크 유스 (2005~2006)

독일의 축구선수 출신 축구감독. 2021년부터 첼시 FC 감독을 맡고 있다.

뛰어난 전술적 역량과 유스 발굴 능력을 가졌지만 괴짜를 넘어 괴팍하고 사이코틱한 성격으로 유명한 독특한 감독이며, 10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답니다.

- 선수 경력

어린 시절 TSV 크룸바흐의 유소년 팀에 입단하는 것으로 축구 인생을 시작한 투헬은 1988년 FC 아우크스부르크의 유스팀으로 자리를 옮긴다. 1991년과 1992년 DFB 유소년 포칼을 2연패하는 데 기여한 후, 투헬은 19살의 나이로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를 연고지로 한 2부 리그 팀 슈투트가르트 키커스(Stuttgarter Kickers)로 이적을 감행하고 이 곳에서 같은 해 여름 성인무대 데뷔식을 치른답니다.


하지만 데뷔 시즌이었던 92-93 시즌에는 불과 8경기에 출장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다음 시즌에는 더더욱 실망스러운 폼을 보여주면서 방출되고 만다. 오갈 곳이 없어진 투헬은 3부 리그였던 레기오날리가쥐트의 SSV 울름 1846으로 이적했고 네 시즌 동안 팀의 핵심 수비수로 활동하면서 1998년 2부 리그 승격에 힘을 보태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해 승승장구하나 싶었지만 고질적인 무릎 연골 부상[5]으로 인해 이 해를 끝으로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선수 생활을 접어야만 했답니다.

- 전술 스타일

전술 스타일은 매우 유동적이고 효율적이다. 공격 방식은 공간의 최대 활용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마인츠 시절부터 전방의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이 중앙이나 측면을 파고들어 비는 공간이 생기면 이를 다른 선수들이 침투하여 골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즐겨 사용했다. 축구장 전체를 최대한 활용하여 넓게 공격을 펼치고, 수비들이 이를 막기 위해 따라오면 남는 공간을 나머지 공격자원들이 차지하고 패스를 받아서 연결하는 것이다.

마인츠 때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4-4-2를 사용했는데 공격시 때때로 투톱을 맡은 공격수들이 넓게 벌리며 수비를 달고 오면 2선의 공격진들이 그 자리를 파고들고 공격을 전개했다. 이때 수비는 최대한 오버래핑을 자제하고 대신 공격을 지원하는 정도로 대신했다. 도르트문트에서는 4-2-3-1과 4-3-3을 주로 사용하는데 기본적인 전제는 변하지 않았다. 때로는 윙 자원들이 중앙에 집중한 사이 비는 공간을 풀백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크로스를 올리고 골 기회를 만들어 내고 때로는 윙과 원톱이 스위칭을 통해 수비를 교란하고 공간을 만들면 이 빈 공간으로 침투하여 골을 만들어 내는 것들이 그것이다.

여기에 포메이션과 선수배치는 상당히 유동적이다. 즉 본인이 원하는 '공간의 활용을 이용한 공격' 이라는 대전제 아래 팀의 성향과 선수 구성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마인츠 때는 좋은 윙 자원이 없어서 4-4-2를 베이스로 삼고 공간 창출 역할은 투톱에게 맡겼다. 그와 동시에 중앙은 단단하게 막아놓고 공격 전개를 했다. 도르트문트의 선수 구성은 마인츠보다 훨씬 좋기에 풀백에게도 적극적으로 공격을 주문하여 아예 상대가 공격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전술은 상대가 대놓고 수비적으로 드러누워버리면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중앙을 두줄 수비로 틀어막아버리면 공간 창출이 안돼서 고전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수비 방식은 '필요하다면 좌우 공간은 내어 주되, 중앙 공간만큼은 철저히 지킨다'는 식이다. 특히 클롭 감독과 같이 수비에 있어서는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붙어 볼을 뺏는데 주력하고 볼을 뺏는 즉시 패스를 통해 빠르게 공격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만 과거 도르트문트와는 달리 공격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압박하지는 않고 중앙의 경우는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상대의 패스를 차단하고 볼을 뺏는데 주력한다. 이때에는 좌우 수비는 최소한으로 하고 수비들간의 간격을 좁혀서 중앙은 내주지 않겠다는 식이다. 이러한 수비방식은 윙 자원이 보통인 팀들에게는 효율적인 방식이나 윙 자원과 2선이 강한 팀들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도 보여준다

다만 위의 공격 전개나 수비 방식은 마인츠에서의 경우이고 도르트문트, 파리, 첼시를 거치며 보여주는 모습은 사실상 그 팀의 선수들에 맞춘 전술을 기본 베이스로 사용한다. 도르트문트에서는 양쪽 측면 풀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공간 좌우 폭을 넓히는 방식을 사용했고, 파리에서는 강력한 공격수들을 활용하여 하프 스페이스와 상대 수비진과 중원 사이의 3선 지역의 공간을 종적으로 창출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첼시에서는 그동안 4백을 애용해왔던 모습과는 다르게 3백을 채택해서 수비진을 안정화하여 측면, 중앙 수비를 모두 강화했고 그 동안의 팀들과는 다르게 수비축구를 사용했답니다.

거의 매 경기 전술을 바꾼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여러 전술을 시도한다. 다양한 전술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 되기에 한 팀 한 팀 맞춤 전술을 준비하는 듯. 다만 이렇기 때문에 전술 이해도가 높은 선수들을 많이 필요로 한다. 도르트문트 시절에도 이러한 경향이 있었고 PSG 시절에는 투헬의 의중을 온전히 수행할 선수는 네이마르, 다니 아우베스, 마르코 베라티 정도가 다인 상황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고 비판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탁월한 전술적 역량으로 인해 자신의 이상적인 전술을 경기 중에 사용하는 경향의 감독[8]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철저하게 실리주의인 감독이다. 파리, 도르트문트 시절 다양한 전술 변화를 보여주면서 오해를 받은 케이스로, 파리 시절 챔스에서 도르트문트, 아탈란타에게 밀리고 있을때 공격수 5명을 배치하여 역전하거나 첼시 시절 공격수들의 부진이 심각해지자 '한골만 넣고 잠근다'를 실천해서 팀의 수비라인을 밑으로 내려버리는 등 승리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실리를 챙겨가는 감독이다. 투헬이 새로운 전술 시도를 하는 경우는 상대팀에 비해서 압도적인 전력 우위를 지니는 경우를 제외하면 없다. 기본적으로 승리가 가장 1순위인 스타일이다.

이러한 전술적 역량과 선수들의 장단점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선수들을 본래의 포지션이 아닌 다른 포지션으로 변경해서 사용해 성공한 경우가 꽤나 있다. 우선 도르트문트 시절 풀백 라파엘 게헤이루를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해 도르트문트 중원의 핵심으로 사용한 적이 있고, 파리 생제르망 시절 마르퀴뇨스를 센터백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해 좀더 공격적으로 사용해 좋은 결과를 냈다. 현재 첼시에서도 캘럼 허드슨오도이를 3백의 윙백으로 변경하여 실험 중에 있고 리스 제임스를 중앙 수비수로 기용하기도 했답니다.

여기에 메이슨 마운트와 더불어 티모 베르너는 중앙 원톱 롤로 고정하지 않고, 측면에서 상대 수비 공간을 벌리는 역할을 맡기거나 스위칭을 통해 중앙에 들어오면서 카이 하베르츠나 하킴 지예흐 등과의 연계 플레이도 심심찮게 잘 써먹고 있다.

- 문제점 및 비판

감독으로서의 뛰어난 역량은 물론 상황에 따라 재빠르고 유동적이면서도 전술적인 대처 능력을 갖춰서 세계적인 명장인 위르겐 클롭 감독 그리고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 견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난 감독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럼에도 투헬이 클롭이나 과르디올라에 비해 평가가 낮은 것은 장점들을 반감시킬 정도로 인격적인 부분에서 문제를 드러내거나 기행을 보였기 때문이랍니다.


위르겐 클롭 감독은 뛰어난 능력과 더불어 따뜻한 인간적인 면모와 선수들을 아우르는 특유의 포용력에 덕장으로 정평이 난 감독이고, 펩 과르디올라는 감독으로서 유능하나 사람으로서는 차갑고 가까이 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크게 선을 넘은 적은 없었으며 많은 선수들이 믿고 따르는 감독이다. 반면 투헬의 경우 마인츠, 도르트문트, 특히 PSG을 감독했을 때 훌륭한 성적과 결과를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선수들과 경영진과의 심각한 마찰을 야기하며 끝내 경질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하 문단에서 토마스 투헬이 벌였던 기행과 문제점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답니다.

선수 보는 눈이 상당히 의심스럽다는 이야기가 많다.

파리 생제르맹시절부터 첼시 시절까지, 투헬이 영입한 선수 중 평균 이상의 적응력과 실력을 보여준 경우는 후안 베르나트 정도이고, 로멜루 루카쿠 같은 경우는 그냥 처참하게 망했다. 또, 투헬 부임 이후로 첼시의 가장 중요한 이적시장인 22-23 여름이적시장에서 라힘 스털링, 칼리두 쿨리발리를 영입하는 것 까지는 좋았으나, 쥘 쿤데를 맨시티의 4옵션 센터백인 나단 아케와 파리 생제르맹의 홈그로운이라 이적 가능성이 낮은 프레스넬 킴펨베와 저울질하다 놓쳐 비판을 받았답니다.

- 선수, 보드진과의 불화

투헬은 감독으로서 선수들과 친화적인 관계를 갖지 못하는 편이다. 도르트문트 시절에 멘탈 상담이 필요한 마르코 로이스, 누리 샤힌, 마츠 훔멜스 등을 잘 통제하지 못해 라커룸에 분란이 생기게 했다. 하필이면 전임 감독이 선수에게 친화적인 위르겐 클롭이라 더 비교가 되었다. 주니어 선수들과는 좋은 관계를 맺었고 매우 걸출한 재능의 선수를 여럿 발굴해내는 역량을 보여줬으나 선수들과 좋은 인간 관계를 맺었다고 볼 순 없답니다.

파리에서는 네이마르 등의 주축들과는 물론, 선수단 전체와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2020-21 시즌 들어 새로 영입된 수비형 미드필더 다닐루 페레이라를 센터백에, 센터백 마르퀴뇨스를 수비형 미드필더에 기용하는 특이한 전술을 사용했는데, 당사자들과 선수들이 의문을 표했음에도 계속 시도하면서 선수단 내부에 약간의 불만을 야기했다. 도르트문트 시절에도 그랬지만, 이 사건 또한 투헬의 특이한 전술 성향이 불러온 일이다.


구단과 자주 마찰을 일으키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마인츠를 떠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사령탑으로 부임하는 과정에서 마인츠 보드진과 심각한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마인츠의 CEO가 도르트문트 CEO에게 투헬을 까는 말을 했을 정도랍니다.

그리고 도르트문트에서도 보드진과의 마찰로 인해 경질당했다. 도르트문트 재건의 결정적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수석 스카우트 미슐린타트가 투헬과의 불화 끝에 아스날로 떠나기도 했다. 선수들과도 큰 불화를 겪었고, 경질 이후 바이에른 뮌헨 차기 감독 후보군으로 나겔스만과 함께 꼽혔지만, 이러한 전력 때문에 바이에른 뮌헨 감독이 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

이는 파리 생제르맹에서도 이어져 2019-20 시즌 코로나-19에 의한 리그 중단으로 리그 우승을 일찍이 확정짓고 쿠프 드 프랑스에 쿠프 드 라 리그까지 제패하는 도메스틱 트레블까지 달성했으며 무려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까지 이루었으나, 보드진과의 안좋은 관계 때문에 결국 2020-21 시즌 중간에 경질당했다.

특히 파리의 단장인 레오나르두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파리가 스트라스부르와 경기에서 대승을 한 직후에 단장이 경질을 통보해버리자 투헬은 이에 분노해 고함까지 질렀다고 한답니다.

그나마 첼시에 부임한 이후로는 그간 선수들 또는 보드진과의 마찰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선수들, 구단 관계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첼시의 시스템이 의사 결정을 원활하게 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하고 있고, 본인이 이전보다 더 발전하고 안정적인 사람이 되었으며 자신의 믿음에 대해 너무 고집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첫 시즌 말미에 이적 시장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구단 수뇌부와 마찰을 빚지 않는게 가장 큰 목표라고 밝히며 장족의 발전을 이뤄낸 투헬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첼시에서 어느 정도 고치는 모습을 보이게 된 또다른 이유로는 그 동안 선수들 또는 보드진과 싸우던 모습을 보면서 그의 아내가 굉장히 힘들어하는 걸 보고 본인부터 고치기로 마음먹게 된 것이라고 한다.[14] 노력의 성과인지 로멜루 루카쿠가 팀 분위기를 망치는 기행을 벌일 때 면담을 통해서 해결하는 모습을 보였답니다.

- 인격적인 결함과 기행

투헬은 좋게 말하면 괴짜, 나쁘게 말하면 무감정하고 냉혹한 싸이코로 불릴 정도로 악명이 높다. 대표적인 것이 도르트문트 시절의 여러 사건(대표적으로 후술한 하인츠 뮐러를 인격적으로 모욕하며 발생한 충돌)과 PSG 시절의 바샥셰히르 전 인종차별 사건이다.

도르트문트와 PSG 등에서 보여줬듯 감독으로서 전술적 역량은 뛰어나며, 선수단과의 소통도 생각보다 나쁜 편은 아니지만, 본인의 예측할수 없는 괴팍한 성격과 결합하여 항상 보드진과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으며, 논란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도 떨어진다. 특히 선수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면모가 부족해 선수단 장악을 잘 하다가도 예상 밖의 사건이 하나 터지면,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삽시간에 지지를 잃는 사례가 잦다. 특히, 현재까지 감독을 맡았던 1군 팀들에서 감독직을 놓게 된 사유들이 다 인성 문제랍니다.

첼시 감독 2년차 이후, 팬들의 지지와 성원에 힘입어 멘탈적인 부분이 많이 개선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리, 도르트문트 시절에는 팬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으나, 힘든 외적 상황에서도 인터뷰, 팀을 대하는 태도 등으로 인해 많은 호감을 샀답니다.

- 기타

이용수가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 중 하나로 점찍기도 했다. 하지만 미팅에 참석하지 않아 제외됐답니다

분데스리가 내의 한국 선수들과 인연이 있는 편이다. 마인츠 시절 구자철, 박주호가 있었고 도르트문트로 이적 후 박주호를 데려오기도 했다. 구자철이 푼 썰(유튜브 아이콘)에서 2012-13 시즌 말기 아우크스부르크와의 임대가 끝날 무렵부터 투헬이 지속적으로 구자철에게 "너를 무조건 영입할 것이다."며 연락을 했다고 한다. 볼프스부르크로 돌아간 뒤에도 두 달 동안 투헬이 경기 잘 했다며 문자를 보낼 정도였ㄷ바니다.

결국 구자철은 2013-14 시즌 중반에 마인츠로 이적했는데 이 때 투헬이 처음 한 말이 "자신이 감독하면서 처음으로 선수와 밥을 먹었다."고 한다. 이후, 투헬이 도르트문트로 부임하고 구자철도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했을 때 두 팀이 포칼에서 붙었고 경기 후, 구자철은 투헬에게 인사나 하려고 도르트문트 버스를 탔는데 그 때 투헬이 이적한 선수가 먼저 다가와서 인사한 적은 처음이라며 반가워했다고 한답니다.

구자철은 마인츠 시절 유누스 말리와의 로테이션 때문에 출전 시간에 불만이 있어 스트레스를 받았었지만 그럼에도 투헬과 여전히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투헬이 선수들과의 불화가 끊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굉장히 이례적이랍니다.

위르겐 클롭 감독의 뒤를 이어 도르트문트를 지도하게 되었고, 마인츠 시절 U-19 감독과 1군 감독으로 지내는 등 유사성이 눈에 띄어 명실상부 클롭의 후계자로 주목받았다. 오트마어 히츠펠트-위르겐 클롭으로 이어지는 도르트문트 명장 계보를 이을 차세대 지략가로 기대를 받기도 했다. 실제로 클롭이 도르트문트를 떠나면서 직접 구단에게 투헬을 후임 감독으로 추천했답니다.

단 투헬 감독은 그 전술에 관해서 펩 과르디올라를 많이 참고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펩 과르디올라와 사적으로 자주 만나면서 축구 전술에 대하여 많은 토론을 하는 등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과르디올라가 맨체스터 시티 감독으로 떠나면서 바이에른 뮌헨 후임 감독으로 투헬을 강력하게 추천했다고 하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답니다.

더불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으로 헤어만 바트슈투버(Hermann Badstuber)를 꼽았다. SSV 울름 1846 시절 코치와 선수로 만났는데 그때 그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참고로 그는 홀거 바트슈투버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안목이 좋은 편이다. 현재 FC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 율리안 나겔스만을 발굴한 것도 투헬이다. 아우크스부르크 2군 감독 시절에 선수로 뛰던 나겔스만이 부상당해 선수생활을 접게 되자, 그의 분석 능력을 예의주시하던 투헬이 그를 상대팀 전력 분석관으로 임명시켰다. 당시 나겔스만의 나이는 20세였다.

이후 율리안 나겔스만은 호펜하임 유스팀 감독을 거쳐 만 28세의 나이로 호펜하임 1군 감독직에 올랐으며, 능력을 인정받아 2019-20 시즌부터 87년생의 젊은 나이로 RB 라이프치히의 감독을 맡은 데 이어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직까지 맡게 됐답니다.

또한 투헬은 독특한 방식의 소유자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감독인 마르코 로제와 그의 젊은 수석코치인 레네 마리치와 한 때 그의 밑에서 같이 생활한 적이 있답니다.

첼시 FC 부임 이후 컨퍼런스에서 밝혀진 것에 의하면 채식주의자라고 한다. 다만 비건은 아니고 선택적으로 채식을 즐겨서 하는 수준의 플렉시테리언 정도라고 한다.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키가 190cm에 달하는 장신에 전직 프로선수였음에도 몸무게가 72kg 밖에 나가지 않는 이유는 아마 위의 채식 덕택일 가능성이 높다. 키는 큰데 몸은 말라서 호리호리한걸 넘어 날카롭다고까지 느껴지는 몸매를 갖고 있다. 키가 크고 말라서 옷 핏이 좋답니다.

전임 감독이던 프랭크 램파드 시절에 제정되었던 벌금 규칙을 폐지했는데, 이는 투헬 본인이 지각 등에 대해 엄격한 규율로 선수들을 관리하는 방향보다는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지각을 하지 않게 하는 방향을 선호해서 폐지를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이에 대해 자신은 경찰이 아니며, 선수들이 알아서 규칙을 잘 지키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답니다.

2019-20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PSG 회장 켈라이피를 만나 식사를 했는데 이때 결승전 때 신으라며 새 운동화를 선물받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결승전 당일에는 다리를 다쳐 다른 신발을 신었고 준우승을 했다. 2020-21 시즌 결승전에는 선물받은 신발을 신고 나갔더니 우승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신발로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후 라커룸에서 마르코스 알론소가 샴페인을 부어먹었다. 첼시의 우승 뒷풀이 영상을 보면 투헬이 샴페인을 뿌리면서 라커룸에 들어온 후 돌연 신발을 벗고, 선수들이 그걸 좋다고 우르르 몰려가서 들어올리는 희한한 광경이 나온답니다.

PSG 감독 시절 필리핀 가정부 아들의 심장수술비를 지원해 주었고, 경질 직전에는 가정부가 필리핀에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호화 저택을 구매해 선물해 주었다고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