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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휴먼재단 나이 군대 고향 도전 16좌 부인 아내 이순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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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흥길 부인 아내 와이프 공개

엄홍길이 산악인다운 집을 공개했답니다.


엄홍길은 10월 6일 방송된 SBS '배기완 최영아 조형기의 좋은아침'(이하 좋은아침)을 통해 김제동과 함께 등산을 다녀온 후 김제동과 제작진을 집으로 초대했다.

엄홍길 집은 들어서자마자 넓은 마당과 대청마루가 눈에 띄었다. 엄홍길은 집에는 많은 액자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엄홍길은 "제가 16좌 완등한 산 중에서 가장 많은 실패와 사고가 있었고 동료까지 잃었던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산 안나푸르나 산입니다"고 집에 걸린 그림을 설명했다. 엄홍길은 집에 있는 그림을 산악용 밧줄로 묶어둬 눈길을 끌었답니다.

엄홍길 집은 일반 가정집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소품들이 가득차 있었다. 엄홍길은 여행을 가거나 등반을 가면 항상 거북이, 코끼리 소품을 사왔다고 말했답니다.

엄홍길 집에는 여기저기 정체 모를 천이 묶여 있었다. 엄홍길은 "히말라야 등반 갔을때 현지 산악 안내인들이 준거다"고 밝혔다. 엄홍길 서재는 베이스캠프를 방불케 하는 등산 용품들로 가득차 있었답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 엄홍길은 김제동, 김세환과 함께 등산을 하는가 하면 아내 이순래 씨, 아들 엄현식 군, 딸 엄지은 양을 소개했습니다.

- 프로필 이력 경력

출생,나이 
1960년 9월 14일 (61세)
고향 출생지
경상남도 고성군

신체 키
167cm, 66kg

학력
호암초등학교 (졸업)
의정부중학교 (졸업)
동두천중앙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학사)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학 / 석사)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체육학 / 석사)

병역 군대
대한민국 해군 특수전전단(UDT) 병장 전역
종교
불교

가족관계
배우자(부인 아내 와이프) 임순래, 슬하 1남 1녀
직업
산악인

소속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

대한민국의 산악인. 경상남도 고성군 출신이지만 3살 때 경기도 의정부시로 이사가서 원도봉산에서 성장했답니다.

그의 생애와 과거

1988년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2001년에 한국에서 두번째[3]이자 세계 8번째로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를 완등했다. 그리고 다른 8,000m급 위성봉인 얄룽캉과 로체샤르를 등정하여 16좌 등정에 성공한 대한민국과 세계 산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랍니다.


다만 엄홍길의 시샤팡마 등정은 1993년에 이루어졌으나 등정 실패 의혹으로 인정 받지 못한 탓에 논란을 불러왔으나, 히말라얀 데이터베이스의 국제 공인 기록인 2001년의 재등정을 인정받으면서 마무리되었다. 아무래도 시샤팡마는 중국 영토로 완전히 들어간 터라 조작 의혹도 가능한 반면에 중국이 텃세를 부리기도 쉬운 까닭도 있다. 당장 위키백과 한국어판에 보면, 14좌 완정 의혹에 있는 이들 중에는 시샤팡마 등정 관련으로 들어간 이들이 4명 중 2명이랍니다.

대한민국에서 산악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로서, 16좌 등정 이후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16좌의 마지막 고비였던 로체샤르 등정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산악인으로서의 삶과 도전 정신 등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평소에 무릎팍도사를 보지 않던 사람들도 '엄홍길이 나오니까 한 번 볼까'해서 본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간 수많은 강연과 방송 출연을 해왔지만 무릎팍도사라는 예능 프로에 나오게 된 이유는, 산에 관련된 에피소드나 인생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예능 프로그램이라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답니다.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로체샤르가 지금까지 오른 산 중에 제일 힘들었다고 말하며, 다른 산은 보면 볼수록 익숙해지고 정이 가는데, 로체샤르만큼은 정나미가 떨어진다고(...) 로체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엄홍길 대장이 오른 루트가 수직 빙벽이 3,500m로 꽂혀있는 로체샤르랍니다.

다만 여기서 짚고 넘고 넘어갈 부분이 있는데 도올 김용옥은 인터뷰에서 '인간으로서 어느 누구도 16좌의 전설을 달성치 못했다. 그런데 엄홍길은 이 전설에 도전장을 냈다.'라는 말로 시작하고 엄홍길은 "천지신명의 도움으로 마지막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계최초 16좌 등정의 위업 달성'은 마치 '전 세계의 산악인이 앞다퉈 경쟁하였음에도 엄홍길이 최초로 달성했다'는 뉘앙스를 주어 논란의 소지가 있답니다

지구상에 8,000m가 넘는 봉우리는 14개도, 16개도 아닌 20여개 쯤 있는데 이 중 우뚝 솟은 핵심 봉 14개를 산악인들이 8,000m 14좌라 불러왔고 이는 세계적으로도 공인된 봉우리이다. 그러나 위성봉인 얄룽캉, 로체샤르는 독립성이 강할 뿐 14좌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히말라야 14좌 최초 등반가인 라인홀드 메스너를 비롯해 예지 쿠쿠치카, 에르하르트 로레탄까지 이미 전설이 된 그 어느 누구도 16좌 완등을 이루기는 커녕 시도조차 한 적이 없답니다.

물론 히말라야 16좌 등반은 그 자체로 사실이고 또 대단한 업적이기도 하며 적어도 이 사실 자체는 폄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국내에서만 적용되는 독특한 기준으로 다른 국내 산악인들이 "왜 당신은 16좌 등반을 못 했느냐"는 질문에 곤혹스러워하고 실제 박영석, 한왕용, 김재수, 김창호 등 14좌 완등한 이들이 스폰서를 받기가 더욱 어려워진 것은 문제가 있다. (이들 중에는 "뒤통수를 맞았다"며 섭섭해한 이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못 한 것이 아니라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더 큰 문제는 이를 영화화한 히말라야(영화)가 '실화'를 표방하는 점에 있는데 해외로도 수출되기도 한 이 영화가 자칫 해외에서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가 한 인터뷰 기사에는 인터뷰어가 '진정한 히말라야 완등은 16좌가 되어야 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쓴 문장이 있는데 이런 부분을 왜 바로 잡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다. 그도 그런 것이 히말라야에는 공인된 14좌 혹은 8,000m가 넘는 20여개의 봉우리가 있을 뿐 16좌라는 말 자체가 없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엄홍길도 14+2좌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입장 바꾸어 생각해보면 14좌를 완등한 옆나라 일본 등반가가 옆의 위성봉 4개 정도 더 오른 뒤에 '어느 누구도 못한 전세계 최초 18좌 완등 위업 달성'이라고 한다면 그 자체는 사실이지만 이것이 다른 등반가들이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일본 등반가가 최초로 이루어낸 것으로 해석된다면 당연히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답니다.

게다가 이미 수많은 루트가 개척되어 수많은 14좌 완등을 이룩한 현재의 산악계에서는, 14좌 완등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않고 큰 업적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K2의 서벽을 개척한 소위 러시아의 괴물들 중 14좌 완등자는 한 명도 없고 안나푸르나 남벽을 단독으로 개척등반한 율리스텍 또한 14좌를 다 완등하지는 못했고 윈터 마에스트로라 불리며 현재 동계초등 4회로 공동 1위에 올라있는 시모네 모로 역시 14좌를 오르진 않았답니다.

사실 세계에는 8,000m급 이상의 위성봉을 수차례 등정한 인물들이 꽤 있다. 다시말해, 16좌 이상을 오른 산악인들도 꽤나 존재한다는 소리. 하지만 14좌 외에는 공식적인 기록으로 인정받지 않는데다, 기록적인 의미없이 개인적인 성취감에 의미를 두고 등반한 경우가 많다보니 14좌 이상의 기록은 산악인 스스로도 홍보하지 않는다. 하지만 엄홍길은 산악에 대해 무지한 한국에 '16좌'라는 자극적인 타이틀로 본인을 홍보한 것이랍니다.

엄홍길의 이런 상업주의적 기록주의에 비판이 될 수 밖에 없는 점은, 산악과 등반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오로지 기록만으로 자신을 남겨서, 다른 순수한 등반인들이 상대적으로 등반 자체에 대해 가치를 폄훼받게 한는다는 점이다. 실제 한국 산악계, 더 나아가 해외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들은 엄홍길이나 박영석 같은 사람들이 전혀 아니다. 유학재, 박정헌, 정승권, 최석문, 김창호, 임덕용, 남선우와 같이 신루트 개척, 초등, 단독 등반, 동계 등반의 기록을 남긴 등반가들이다. 하지만 '16좌' 같이 자극적이고 상업적이며 마케팅만을 앞세운 기록 앞에 국내에서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는 생각해볼 문제이랍니다.

대한민국 해군 출신, 그것도 UDT 출신이라는 이색적인 경력으로도 화제가 된 산악인. 산에 오르던 그는 넓은 바다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1981년 해군신병 224기 수병으로 입대했으며, 갑판병이 되어 함정 근무를 하다가, 타던 경비정이 화재로 퇴역 처리된 뒤 퇴역함 관리병이 되자 이를 지루하게 느껴 UDT에 지원하게 되었다. UDT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경험한 군생활이 훗날 히말라야를 오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군 시절 경주시 감포에서 독도까지 5박 6일동안 수영해서 가기도 했다고 한다(...)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2010년 KBS 병영체험 프로그램에서 모군인 UDT를 다시 찾기도 했답니다.


산악인으로서 그의 마인드는, 산을 오를 때에 산이 잠시 정상을 빌려주는 것일 뿐 산을 정복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산이 허락해 주지 않으면 자기가 아무리 경험이 많은 산악인이라도 정상에 오르는 건 불가능하다고. 흔히들 신의 영역이라 부르는 8,000m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자연의 섭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자신을 낮추고 겸허한 자세로 산을 오르게 된다고 한답니다.

더불어 산에 오르다보니 언제라도 죽을 각오를 해서 2013년 3월 4일 TV에 나와 미리 쓴 유서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후배이던 박영석(1963~2011), 박무택, 백준호, 장민, 지현옥같은 등산가들이나 친하게 지내던 셰르파들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걸 하도 많이 봤으며, 자신도 죽을 고비를 많이 겪다보니 이런 유서 작성은 당연했을 것이랍니다.

아이스 에이지 2에서 딱정벌레 아빠 역으로 더빙을 맡기도 했다. 참고로 여기에 조오련, 하일성 같은 다른 스포츠 분야 전문가들도 같이 더빙을 맡았답니다.

16좌를 제패한 이후에는 8,000m 고산에는 오르지 않고 있으며 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딴 엄홍길 재단의 일에 집중하고 있다. 안나푸르나 등정 당시 모든 것을 베풀며 살 것을 다짐했다고 하며, 네팔에 학교를 지으면서 이 맹세를 지키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17개의 학교를 세웠으며, 1986년도에 사망한 셰르파 동료의 사망 후 유족들을 찾아갔더니 너무나 어럽게 살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 후손들이 아버지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도록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학교의 보건 교사가 되거나 새로운 학교를 세우는 건설현장의 현장 소장이 되기도 했답니다.

그의 책을 보면 요즘 기후 변화(지구 온난화)가 에베레스트나 히말라야에서도 뼈 저리게 알 수 있을 정도라는 걱정이 나온다. 1980년대만 해도 히말라야의 산들은 날씨가 나빠도 사흘 정도만 마을에서 쉬면 날씨가 좋아졌지만, 2000년대에 와선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산 곳곳에 눈이 많이 녹은 게 갈수록 늘고 있다면서, 산마을에서도 차와 첨단장비로 편하게 지내고, 갈수록 자연이 오염되고 있는데 머지않아 히말라야 산들에 눈이 남아있긴 할까 걱정이 된다고 회고했답니다.

2015년 네팔 대지진 때, 지인들과 함께 네팔에 구호 활동을 위한 자원 봉사를 하러 갔다. 네팔에 대하여 애정이 각별하다고 밝혔는데 그럴 만한 게 네팔에 초등학교도 세워주고 친구들도[10] 많다고 했다. 후배 산악인들에게 네팔 사람들을 무시하면 내가 가만 안 둔다고 엄격한 충고를 할 정도로 네팔은 제2의 조국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만큼 이 지진 여파가 남일이 아니었으리라.

2015년 12월 16일 개봉한 히말라야에서 황정민이 연기했답니다.


2016년에는 바둑기사 조훈현 九단과 엄홍길 대장에게 새누리당에서 비례대표를 제안했다는 기사가 등장했다. 처음 보도된 당시에는 엄홍길 대장이 입당을 고려하는 중이라는 기사가 났었으나 후에 엄홍길 대장이 지인에게 입당제의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완곡한 거절의 의사로 생각해보겠다고 말을 했는데 이를 언론에 보도해서 당황스럽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또한 "지금은 정치에 생각이 없다. 히말라야와의 약속을 먼저 지켜야 한다"며 입당을 확실하게 거절한다는 내용으로 다시 인터뷰한 기사가 올라오면서 정치계 진출 소동이 일단락 되었답니다

21대 총선에서는 미래통합당 소속의 나경원 지지유세를 했다. '나경원 후보 지원유세 참석한 엄홍길' 나경원 외에 황보승희와 박종진 등 미래통합당 후보들의 지지유세를 했다. 위에 언급했듯이 2016년에는 민주당 후보 지원유세를 해준 것을 보면 특정 당을 민다기 보다는 그냥 인맥 따라 지원유세를 해주는 스타일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