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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클 이진 결혼 남편 배우자 나이 프로필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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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남편♥ 결혼 미국行 이진 뉴욕댁 럭셔리 일상
-2024. 5. 9.

걸그룹 핑클 이진이 뉴욕댁의 일상을 공개했다.

이진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언니랑"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게재했습니다.


공개된 사진 속 이진은 지인과 함께 미국 뉴욕 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모습이다.

검은 뿔테 안경을 착용한 이진은 변함없이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했답니다.

해당 사진을 본 성유리는 "보고 싶어"라고 댓글을 남겨 이목을 끈다.

한편 이진은 지난 1998년 핑클로 연예계 데뷔해 많은 인기를 모았다. 이후 이진은 2014년 지인 소개로 만난 금융업계 종사자 비연예인 남성과 2016년 2월 미국 하와이에서 결혼했다. 현재 미국 시민권자 남편과 함께 뉴욕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결혼' 이진 "예비신랑 금융맨, 훤칠한 호남형"
-2016. 2. 16.

핑클 출신 배우 이진이 이효리에 이어 품절녀가 된다.

이진의 소속사 킹콩엔터테인먼트 측은 16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진이 오는 20일 미국 하와이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는 일반인 남성과 결혼식을 올린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하와이 현지 교회 목사의 주례 하에 일가친척들만 함께 하는 비공개 스몰 웨딩으로 진행한다"며 "식후 하와이에 머물며 신혼여행을 한다"고 전했다.


소속사에 따르면 이진은 6살 연상인 예비신랑과 지난 2014년 지인의 소개로 만나 1년간 교제 끝에 결혼을 약속하게 됐다. 이진의 예비신랑은 교포가 아닌 한국 태생의 미국 시민권자 로자상한 성품에 훤칠한 호남으로 알려졌다고 소속사는 설명했답니다.

이진은 당분간 남편과 함께 미국 뉴욕에서 신접살림을 차리고 한국을 오가며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이진은 지난 1998년 걸그룹 핑클로 데뷔해 2002년 시트콤 '논스톱'을 시작으로 연기자로 전향했다. 이후 '왕과 나', '혼', '영광의 재인', '출생의 비밀' 등에 출연했으며 지난 2013년 '빛나는 로맨스'에서 주연을 맡았습니다.

이수진 치과의사 남편 결혼 이혼 재혼 나이 프로필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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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이수진 "사실 두 번 이혼..연예인과 사귄 적도
-2022. 6. 14

치과의사 이수진이 두 번 이혼 한 사실을 언급했다. 

13일 이수진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사실 저 두 번 이혼했어요'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게재했습니다. 


공개된 영상에서 이수진은 MBN 예능 프로그램 '속풀이쇼 동치미'에 출연해 이혼 사실을 밝힌 것을 언급했다.

라이브 방송을 이어가던 이수진은 '두 번 이혼하셨다는 새로운 사실을 듣고 놀랐다'라는 댓글에 "죄송하다. 근데 굳이 밝히고 정말로 안 밝히고를 떠나서 사람들은 나를 한 번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마치 가만히 있는 거는 거짓말하는 느낌도 들고 그냥 얘기가 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답니다.

이어 이수진은 '차분하게 얘기했으면 악플 덜 받았을 것 같다'는 댓글에는 "들떴었나요 제가. 솔직히 얘기하면 방송국 들어갈 때 폐소공포증이 심하다. 스튜디오 두꺼운 문이 닫히는 걸 못 견딘다. 그래서 우울증 약을 많이. 폐소공포증 약을 많이 먹고 들어가서"라고 밝혔다. 


'오은영 박사님 어떠시냐'라는 질문에 이수진은 "따듯한 사랑이 있다. 백 마디 말로 오늘 고생 많았다고 하는 것보다는 아무 말 안 하고 안아주는데 되게 사랑이 필요로 하는구나 싶었다"라고 답했답니다.

또한 '이혼 후 가장 오래 한 연애'에는 "9년~10년이다. 롱 연애를 두 번 했다"라고 밝혔다. 

이수진은 '연예인이랑 사귄 적도 있었나요?'라는 질문에 "그렇다. 진짜로 유명한 사람도 있고, 안 유명한 사람도 있고"라며"(딸에게) 영상 보여줬다. 딸은 '그렇구나 알바야? 그렇군 내가 더 잘나가'라고 하더라"라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가수 김정호 나이 프로필 노래 작품활동 사망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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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조용호

출생 나이
1952년 3월 27일

고향 출생지
전라남도 광주시
사망
1985년 11월 29일 (향년 33세)

가족
아버지 조재영, 어머니 박숙자, 2남 2녀 중 차남
부인 이영희, 쌍둥이 딸 조정선, 조정운

직업
가수
종교
개신교

김정호 장르, ‘이름 모를 소녀’와 ‘하얀 나비’
2023. 5. 24

가왕 조용필에게 ‘창밖의 여자’가 있다면, 김정호에겐 ‘이름 모를 소녀’가 있다. 조용필에게 ‘고추잠자리’가 있다면, 김정호에겐 ‘하얀 나비’가 있겠다. 노래 제목부터 무언가를 주고받는 듯한 느낌이랍니다.


4년의 시차를 두고 나온 ‘창밖의 여자’(1980년)와 ‘이름 모를 소녀’(1974년)는 두 사람의 사실상 데뷔곡이다. 데뷔곡이 곧바로 불후의 작품이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중가요의 기존 작법과 달랐고 ‘지독하게’ 애절하다는 점도 그렇다.

조용필과 김정호는 그 다음 해 또 한 번 매우 독창적인 노래 ‘고추잠자리’와 ‘하얀 나비’를 발표하며 가요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한몸에 받는다.
 
조용필보다 두 살 어린 김정호는 무명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1973년 음악적 동지인 포크 듀오 어니언스(임창제·이수영)의 데뷔 앨범에 ‘작은 새’와 ‘사랑의 진실’, ‘저 별과 달을’ 등을 작사·작곡해줬다. 엄청난 성공이었답니다.

이 노래들은 애초 임창제 작품으로 발표됐으나 임창제는 바로 김정호의 것임을 털어놓는다.

김정호가 대중에 신비한 존재를 드러낸 것은 그 1년 후인 1974년이다. 비로소 자신의 이름으로 제1집 ‘이름 모를 소녀’를 내놓으며 수줍게 얼굴을 드러냈다.

70년대 중후반 한국 포크계에 독보적으로 우뚝 선 천재 싱어송라이터의 출현이었다.

1970년대는 이미자, 남진, 나훈아가 점령한 트로트 천하를 벗어난 포크와 록의 전성기였습니다.

김민기, 양희은, 트윈폴리오(송창식·윤형주), 한대수, 이장희 등 포크의 창의적 거물들이 등장했다. 신중현의 록도 빼놓을 수 없다.

통기타 하나에 의지해 기존의 노랫말들과는 사뭇 다른 문학적이고 서정적이고 반항적 가사를 입힌 포크는 당시 정치·사회적 억압의 그늘에서 성장한 ‘청통맥’(청바지·통기타) 세대의 출구였다.

전문 작곡·작사가가 아닌 가수 스스로 곡을 만들고 부른 싱어송라이터의 태동이기도 하다. 음악의 자가발전을 이뤘다는 점에서 포크를 ‘한국 음악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평론가들이 있답니다.


포크의 대약진 속에서도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와 ‘하얀 나비’는 이색적이었다. 딱히 포크라고 분류하기도 애매한, 굳이 말하자면 ‘김정호 장르’의 시작이다. 노랫말과 멜로디, 가창 모두 남들과 달랐다. 양희은처럼 청아하지도, 윤형주처럼 달콤하지도, 송창식처럼 현실도피적이지도, 김민기나 한대수처럼 이념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순수하고 근원적인 슬픔을 노래했다. 가사는 대놓고 슬픔의 단어를 말하지 않았으나 창법과 멜로디에는 비애가 뚝뚝 묻어났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작은 몸짓이 영혼을 실어 토해내는 쓸쓸하고도 처절한 가창에 사람들은 매료됐다. 그의 목청은 다른 가수들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한국 대중가수에서 몇 안 되는, 창(唱)의 유전자를 내포했다. ‘한(恨)의 가객’이 불쑥 등장한 것이랍니다.

‘하얀 나비’는 2014년 흥행에 크게 성공한 영화 ‘수상한 그녀’(‘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에서 주인공 심은경이 부르면서 40년이 지나서 역주행하기도 했다.

두 노래는 지금 들어도 구식스럽지 않다. 수많은 후배 가수들이 여전히 리메이크하고,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 자주 소환된다. 하지만 김정호의 노래는 오직 김정호의 목소리만이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준답니다.

김정호는 인기를 떠나서 노래와 인생을 맞바꾼 가수다. 그는 인기를 끌 때부터 폐결핵을 속으로 앓고 있었지만 진심으로 노래에 혼을 쏟아부었다. 1985년 그의 사망 6개월 전 두문불출했던 그를 마지막으로 정말로 인터뷰한 음악평론가 박성서에 따르면 김정호는 “의사는 노래를 부르면 죽는다고 경고했지만,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되레 죽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