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계상과 이하늬가 결별했다. 공개 연애 7년 만에 동료 사이로 돌아간 두 사람이 각자의 위치에서 연기 활동을 이어간다.
11일 윤계상과 이하늬의 결별 소식이 알려졌다. 이 가운데 이하늬가 새 영화 '죽여주는 로맨스' 출연을 확정했다고 알려졌다. 이에 각자의 자리에서 배우로서 활동할 윤계상과 이하늬를 향해 대중의 응원이 계속되고 있다.
윤계상과 이하늬의 결별설은 이날 오전 한 매체의 보도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두 사람이 지인들 사이에서 이미 결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양측 소속사였던 사람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11일 언론에 "윤계상, 이하늬 두 배우가 최근 연인 관계를 정리하고, 좋은 동료 사이로 남기로 했다. 앞으로도 두 배우를 향한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고 공식입장을 표명했답니다.
지난 2013년 열애 사실을 공표하고 7년 동안 연예계 대표 스타 커플로 사랑받았던 윤계상과 이하늬다. 이에 두 사람의 결별은 대중의 안타까움을 자아내며 빠르게 확산됐다.
동시에 윤계상과 이하늬의 향후 행보에도 이목이 쏠렸다. 먼저 윤계상은 이하늬와 함께 몸담고 있던 소속사 사람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마친 뒤 FA 시장에 나왔다. 게약 기간이 1년 여 정도 남아있으나 상호 협의 끝에 먼저 전속계약을 마쳤다는 귀띔이다.
윤계상은 당분간 휴식기를 가질 예정이다. 다만 그는 배우 박용우, 임지연 등과 호흡한 영화 '유체이탈자'에 출연, 지난 1월 촬영을 마쳤다. 영화가 연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만큼 윤계상도 이에 맞춰 스크린에 복귀할 전망이다.
또한 그는 최근 한 목공학교의 정규 과정을 받아 목공인으로 변신한 근황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해당 목공학교 측이 포털사이트의 공식 카페를 통해 윤계상이 목공소에 있는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다만 사람엔터테인먼트는 "목공 일은 작품과는 연관이 없고, 배우가 개인적으로 여가시간에 취미로 배운 일이다. 현재 윤계상은 촬영이나 작품에 관련된 일은 없고, 특별히 다른 스케줄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답니다.
그런가 하면 영화 '극한직업'과 드라마 '열혈사제'의 잇따른 성공 이후 차기작을 고심하던 이하늬는 OSEN 취재 결과 새 영화 '죽여주는 로맨스'를 차기작으로 확정했다. 이에 배우 이선균, 공명 등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과 다음 주 촬영에 돌입한다.
'죽여주는 로맨스'는 섬나라 재벌과 결혼 후 은퇴한 전직 여배우가 옆집 삼수생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다. 독특한 콘셉트의 코믹 스릴러물로 영화 '남자사용설명서'의 이원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 작품인 터. 전작들에서 코믹 연기로 호평받은 이하늬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를 모은답니다.
이처럼 윤계상과 이하늬는 결별 이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배우로서 활동을 이어간다.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스타 커플로 사랑받았던 만큼 열애의 공백이 미치는 영향도 있으나, 각각 한 명의 배우로서 인정받았던 두 사람이기에 연기로서 결별의 후유증을 말끔히 지울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사람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두 사람은 결별 후에도 좋은 동료로 남아 서로를 응원할 전망이다. 그렇기에 한 쌍이 아닌 두 명의 배우로 돌아간 윤계상과 이하늬의 앞날에 더욱 귀추가 주목된답니다
- 이하늬 집안 가족관계 아빠 엄마 부친 모친
가야금 명인 문재숙 씨가 미스코리아 출신 딸 이하늬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21일 오후 9시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이하 '마이웨이')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문재숙 명인이 출연했답니다.
문재숙의 집 현관에는 가족사진이 걸려있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미스코리아 왕관을 쓴 이하늬였다.
이에 대해 문재숙은 "우리 집이 돼지과인데 미스코리아가 나온 게 이변이었다. 너무 기뻐서 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왕관 쓰고 기념했다"고 설명했다.
문재숙의 남편이자 이하늬의 아버지인 이상업 씨는 "(연예 활동) 반대를 많이 했다. 내가 싫어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라고 말했다. 문재숙은 "우리 마음에는 하늬는 아직 영화배우가 아니고 가야금, 국악 하는 하늬다. 아빠 마음속에는. TV를 재미있게 보다가도 쟤가 왜 저기 있지 생각할 때가 있다"고 웃었다.
이상업 씨는 "중고등학교 졸업했을 때 성적이 상당히 좋았다. 첫 애(슬기)도 둘째 애(하늬)도 거침없이 서울대학교를 다녔으니까 그 길로 커줬으면 좋겠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자기 길이 있구나 한다"며 딸의 행보를 응원하고 지지했다.
이날 방송에는 이하늬도 출연해 어머니에 대한 남다른 효심을 드러냈다. 이하늬는 어린 시절 엄마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그러면서 "어릴 때 사고를 많이 쳤다. 말 정말 안 들었다. 키우기 정말 힘드셨을 거다. 나 때문에 머리 끝까지 화가 나신 어머니가 '너 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라'고 하셨다. 나는 키울 때 정말 가슴이 철렁했던 아이였다"고 회상했답니다.
자신이 출전했던 미스유니버스 대회에 대해서는 "어머니가 한국 대표로 나간 이상 잘해야 한다고 하셨다. 드레스보다 한복 의상에 공을 많이 들였다. 그래서 장구춤도 나왔다"고 말했답니다.
- 마이웨이에 등장한 문희상
전 국회의원 문희상이 여동생 문재숙의 딸, 조카 이하늬를 향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21일 밤 방송한 TV조선 예능프로그램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는 가야금 무명문화재 23호 문재숙이 딸 배우 이하늬, 오빠인 전 국회의원 문희상, 언니인 스타노래강사 문인숙 등과 함께 화기애애한 일상을 공개했다.
이날 방송에서 문재숙은 문희상, 문인숙 등 다섯 남매와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 나섰다. 이들은 수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가족 모임을 가지며 돈독한 가족의 정을 느껴왔다고.
이들의 대화 주제는 유명 배우로 활약 중인 문재숙의 딸 이하늬였다. 당시 이하늬 주연의 SBS 드라마 '원 더 우먼'이 방송 중이었던 터, 문희상과 문인숙 등 식구들은 "이번 하늬 드라마 정말 재밌다"라며 칭찬을 이어갔다. 특히 문희상은 "하늬 드라마 중 처음으로 끝까지 다 본 드라마다"라며 본방 사수를 인증했다.
문인숙은 "가족 단체방에도 계속 이야기가 올라오지 않느냐. 하늬는 바쁜데도 거기에 답을 해준다"라며 조카를 기특해 했다. 문희상은 "내가 댓글을 다는 법을 모르니"라며 이하늬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했고, 문재숙은 "내가 외삼촌이 칭찬하시더라 하고 잘 전하고 있다"라고 말했답니다.
이어 남매들은 십수년 전 지난 이야기부터 최근의 근황까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 이하늬 프로필 이력 경력 누구??
출생 나이 생일 1983년 3월 2일 (39세) 고향 출생지 서울특별시 중구
신체 키 혈액형 173cm, 56kg, B형, 255~260mm 가족관계 아버지 이상업(1947년생), 어머니 문재숙(1953년생) 언니 이슬기(1981년생), 남동생 이권형 외삼촌 문희상(1945년생), 외사촌 문석균 남편(2021년 12월 21일 결혼 ~ 현재) 딸(2022년 6월 20일생)
국악 전공으로 가야금, 장구 등의 국악기와 전통무용이 특기이며, 노래도 잘 하는 편이다. 게다가 영어도 잘하며,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등의 어학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원래 YG엔터테인먼트에서 가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NE1 TV에 박봄의 친구로 우정출연(?)하기도. 실제로도 친한 사이라고 한답니다.
동 대학 3년 선배인 김태희와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강심장에서 오정연과 함께 모자이크되는 굴욕을 당했다(. 관련기사~김태희가 3년 선배고, 오정연이 1년 선배인데, 3명이 함께 스키 동아리 활동을 하여 친해졌다고 한다. 방송에서는 그래서 3명이 서울대 스키동아리 3대 미녀 같은 수식어로 나오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과에서는 인기가 있었지만) 스키 동아리 내에서 당시 이미 모델로서 연예 활동을 하던 김태희의 원탑 인기에 나머지는 쩌리였다고 한다. 이하늬는 김태희에게 집적거리려는 남학생들을 막는 경호원에 가까웠다고. 그리고 학교 졸업 후, 이하늬는 방송을 통해 오정연의 전 남편 서장훈과 친해진다.
초반에는 외모와 스펙으로 주목받았지만, 현재는 연기 면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극한직업과 열혈사제 등 선구안이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도 도회적인 면모와 코믹한 면모를 모두 보여줄 수 있고, 망가지는 연기는 동시대 다른 주연급 여배우들 중에서도 몇안되는 배우다. 그뿐 아니라 웬만한 연기 좀 한다는 배우들도 혹평을 피할 수 없는 더빙 연기에서도 좋은 평을 받았는데, 이는 그녀의 발성이 탄탄하단 점을 시사한답니다.
참고로 미스코리아 본선 입상자 출신 배우 중에서는 사실상 마지막으로 성공한 케이스로 꼽힌다. 과거에는 김성희, 홍여진, 김성령, 김혜리, 오현경, 고현정, 염정아, 성현아, 이승연, 김사랑, 손태영 등 미스코리아 본선 입상자 출신 배우가 여럿 등장했고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이하늬 이후로는 성공한 배우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2000년대 후반 이후 미스코리아 입상자들의 진로 성향이나 연예계 입문 경로의 다변화와도 연결되는데 입상자들 다수가 배우로 연예계에 진출했던 과거와 달리 아나운서나 기상캐스터 등으로 진로를 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더구나 미스코리아가 아니더라도 연예 기획사 연습생 캐스팅이나 오디션 프로그램 등으로 연예계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다양해지고 미스코리아의 인기가 갈수록 떨어져 지원자 수와 화제성 등이 감소하는 등 앞으로 연예계에서 성공한 미스코리아 출신은 보기 힘들 전망이랍니다.
- 커리어 알아보기
2006년 미스 서울 진, 이어 2006 미스코리아 진이 된다. 2007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 때 본격적으로 국내에 팬덤을 타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4위에 그쳤지만, 평소 입선조차 꿈꾸기 어려웠던 세계 미인대회에서 선전하여 화제가 되었다. 1988년 미스 유니버스에서 장윤정이 세운 2위에 이은 역대 2번째 순위. 2008년 미인대회 관련 온라인 잡지 GB에서 뽑은 미스 그랜드 슬램에서는 1위에 오르기도 했답니다.
이 때부터 미스코리아 대회 참가자들의 수영복 착용 방식이 달라지는데 전통적인 청색 원피스 수영복 외에 상의와 하의가 분리된 비키니의 착용도 허용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하늬의 사진이 화제가 됐는데 11자 복근의 모습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됐다. 본선에서 진에 오른 후에는 이하늬의 몸매는 물론 집안의 빵빵함이 화제로 달궈졌답니다.
세월이 지나 이하늬가 미스코리아로 나왔을 당시 역대급으로 반응이 좋았던 것처럼 왜곡되어 회자되곤 하는데 이하늬가 대중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크게 각인되기 시작한 건 딱 2007년 미스 유니버스에서 4위로 당선 됐을 때부터이다. 막 미스코리아 진으로 뽑히고 미스 유니버스에 나가기 시작했을 때조차(지금 매우 호평받는 호피무늬 수영복, 어우동 한복 이미지 등이 풀리던 때도) 찬양받지 않았고 호감 이미지가 아니었다. 당시에도 미스코리아에 대한 인식이 이미 안 좋아졌던 시기고 이하늬도 성형을 많이 한 것 같다는 둥 외모 평가 역시 좋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앨범과 서울대 재학 당시 사진을 보면 미스코리아 출전 당시의 모습과 차이가 많았기 때문. 그러다 미스 유니버스에서 4위까지 하게 되자 여론이 반전된 것이랍니다.
그러나 당선 직후에도 이미지가 마냥 좋았던 것이 아닌데, 대개 연예계쪽으로 많이 진출하는 미스코리아들과 달리 이하늬는 미스코리아 선발 당시만 해도 "연예인은 절대로 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전공인 국악 관련 일을 계속 해나가고 싶다고 하더니 결국 금방 연예계로 진출하여, 일부에서는 "말이나 말지"라는 식으로도 까였다. 거기다 탈의실 셀카, 의전 논란, 소속사 먹튀 같은 몇 안 되는 이하늬에 대한 논란도 다 이 때 일이다. 이후 이런 일들이 잠잠해지고 드라마 등에서도 조연급으로 시작해 연기력이 나쁘지 않았으며 점점 이미지가 좋아져 이런 일도 이제 옛말이 되었다.
SBS 한밤의 TV연예 등의 MC를 보기도 했고, 이후 연기에 도전, 파트너(2009), 파스타(2010) 등의 드라마에 조연급으로 출연하였다.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에 공동 주연으로 나섰는데, 2009년 말 MBC 공감토크쇼 놀러와에 출연하여 수준급의 노래 실력을 과시하기도 했답니다.
2011년에는 MBC 일일드라마 불굴의 며느리에서 조연 김연정 역으로 출연했으며, 파스타의 오세영에 이어 2번째로 요리사 배역이다.
2013년 2월 영화 《뒷담화:감독이 미쳤어요》 주연으로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2013년 KBS 월화드라마 상어로 TV에 복귀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공기화되고 말았다.
2014년 1월부터는 MBC에서 금요일 10시에 방영한 《사남일녀》에 출연했다. 4명의 남성 출연자는 고정이지만, 여성 출연자 1명은 매 촬영마다 바뀌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호평이 쏟아지자 아예 고정출연 확정. 기존의 《사남일녀》 출연자는 고정에 에피소드마다 여자 게스트 1명이 추가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마침 MBC에서 드라마 미스코리아가 방영 중인지라, 이와 관련한 드립을 써먹는 중.[13] 프로그램 특성상 시골에서 촬영이 진행되는데, 이 때문에 노상방뇨, 푸세식 화장실 등과 관련된 해프닝이 유독 자주 벌어진다. 제작진이 도시여자, 그것도 미스코리아의 시골 오지에서 구르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듯 하답니다.
2015년부터 온스타일의 Get it beauty 진행자를 맡으면서 여성들을 중심으로 다시 인기 상승세를 찍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진행 능력이 호평을 받으면서 2016년, 2017년 시즌 진행자도 연임했다.
2015년 12월에 냉장고를 부탁해에 이승철과 함께 출연했다. 페스코 베지테리언임이 밝혀졌으며, 상당한 미식가인 듯 고급진 냉장고를 보여주었다. 특히 프로그램 2번째로 통짜 송로버섯이 나온 바 있답니다.
2016년 3월 5일 SNL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그간 닦아온 국악과 연기 실력을 뽐냈다. 9월 8일 개봉한 국산 애니메이션 달빛궁궐에서 매화부인 역으로 더빙에 참여하였는데, 같이 참여한 김슬기와 함께 잘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8년 2월 평창올림픽 폐회식 행사에 출연해서 '춘앵무'란 이름의 전통춤을 추는 공연을 하였다.
2017년 부라더에 이어서, 2019년에 극한직업과 열혈사제 등 코미디 장르 작품에 많이 출연했다. 영화 극한직업은 관객수가 천만을 넘어 천만 관객 돌파 영화가 되었고, 열혈사제도 마지막화 22%, 평균 16.7%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성공했다. 사실상 극한직업이 배우로서 커리어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미인대회 출신이라는 외모에 중점을 둔 팜 파탈, 혹은 남성 캐릭터들을 받쳐주는 역이 대부분이었으나 본인의 성격에 잘 맞는 코메디 장르를 만나면서 흥행과 평단 양쪽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2021년 9월, SBS 금토드라마 원 더 우먼에서 데뷔 이래 처음으로 원톱 주연을 맡았다 극한직업과 열혈사제에서 보여준 연기력이 어디 가지 않았다는 호평과 함께 흥행했다. 호탕한 성격의 인물과 조용하고 차가운 성격의 인물인 도플갱어 연기를 확실하게 보여준데다 큰 신장을 활용한 시원스러운 액션 연기를 선보이는 등 장기를 보여줬다. 김소연을 위협하는 2021년 SBS 연기대상 대상 수상자로 예측하는 의견도 있답니다.
2021년 11월 8일 비연예인과 열애설을 인정했고, 12월 21일 비연예인과의 열애설을 인정한 지 1달만에 결혼을 했으며 2022년 6월 딸을 출산했답니다.
- 가족관계 알아보기
명문가 집안이다. 어머니는 가야금 무형문화재이자 이화여자대학교 前 교수 문재숙이며, 아버지 이상업은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하사 출신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후 전역하고 나서 경찰 간부가 되어 국가정보원 제2차장, 경찰청 수사국 국장 등을 거쳤다. 또한 6선 국회의원이자 18대 국회 전반기와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인 일명 친노계의 원로급 의원 문희상이 문재숙의 오빠로, 이하늬의 큰외삼촌이랍니다.
아버지 이상업은 경찰대학 학장으로 있던 참여정부 시절 경찰청장직에도 물망에 올랐으나,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재인이 '비서실장 매제가 경찰청장이 되면 과연 국민이 납득하겠나. 안 된다.'고 반대해 이뤄지진 않았다고 한다. 문희상 본인도 반박할 수 없는 지적이어서 받아들여야 했다고.
2세 위의 친언니 이슬기 역시 가야금 연주자로서 전통 작품뿐만 아니라 뉴에이지 계열의 퓨전 음반을 여러장 발표하는 등 국악이나 크로스오버 음악 팬들에겐 꽤 유명한 연주자다. 그의 연주곡들이 TV 프로그램 등 여러 곳에서 배경음악으로도 자주 사용되는 편이니, 이름은 들어본 적 없어도 곡은 들어본 적이 있을거다. 언니도 미인이며 서울대 국악과를 나왔다. Get it beauty 자매 특집에 의하면 어린 시절 언니가 더 예뻤기 때문에 늘 '이슬기 여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으며, 심지어 미스코리아가 됐을 때도 너무 당연한 듯이 첫째 미스코리아 된 거 축하한다고 연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답니다.
어머니 문재숙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 이하늬와 언니인 이슬기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 동생 이권형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이수자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엄마, 언니, 남동생이 함께 '이랑'이란 가족 앙상블로 공연도 함께하곤 한답니다.
신체 키 혈액형 172cm|A형|250mm 가족관계 아버지(1975년생), 어머니(1972년생), 언니(1999년생) 반려견 아쪼(2020년 7월 3일생 / ♂)
학력 산남초등학교 (전학) 대전삼천초등학교 (졸업) 대전문정중 대전문정중학교 (전학) 관악중학교 (졸업)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 중퇴)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 (합격)
소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 로고
-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소속 6인조 걸그룹 IVE의 리더.
2018년 엠넷에서 주관하는 걸그룹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듀스 48에 참가한 뒤 최종 선발되어 걸그룹 IZ*ONE으로 2021년 4월까지 활동하였다.
- 데뷔 전의 모습은?
2016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스타쉽엔터테인먼트에서 약 1년 4개월의 연습생 기간을 거쳤다. 2019년 3월 17일 V LIVE 댕댕라이브🐶에 따르면 대전에 살던 시절 친구와 같이 서울로 올라가서 가수들의 연말 시상식 무대를 보고 아이돌에 대한 꿈이 생겼다고 한다. 무대를 보게 된 이후 갑자기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말하자, 당연히 반대할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오히려 어머니는 유진이 여태 꿈이 자주 바뀌기도 하고 유진이 나이대의 선망같은 건 줄 알고 반대 없이 흔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당시엔 어떻게 오디션을 보는지 몰라서[19] 인터넷으로 검색하던 중 이메일 오디션 전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스타쉽으로 무반주로 부른 노래와 자신의 사진을 보냈다고 한다. 이후 메일로 1차 합격 통보를 받았고,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서 2차 대면 오디션을 보고 최종 합격했다고 한답니다.
프로듀스 48 참가하기 전부터 왕성하게 활동했다. 스타쉽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한 지 한 달만에 출연했던 백현, 소유의 듀엣곡 <비가와> 뮤직비디오와 유승우, 산들의 <오빠>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였다. 특히 첫 뮤직비디오 출연작인 <비가와>에서 보여준 신비로우면서도 청순한 모습은 M/V와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았고 팬들 사이에서도 꾸준히 회자되는 영상이다.
- 포지션
IVE의 대표적인 올라운더 멤버. # IVE가 공식적인 포지션이 없는 그룹이긴 하나, 보컬, 댄스, 랩, 비주얼, 예능, 리더십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치를 보여 준다
- 리더 IVE의 리더를 맡고 있다. IZ*ONE 시절부터 어린 나이에도 눈썰미가 좋고 판단이 빨라 팀 내에서 MC 역할을 맡았다. 또한 다른 멤버들을 챙기는 배려도 갖추고 있어 리더에 어울린다는 평이랍니다.
어린 나이에 리더의 무게감을 짊어져 힘들어하는 모습이 1,2,3 IVE에서 여러 차례 보여졌다. 처음 겪어보는 리더의 자리에 어려움을 느끼고 부담감도 커보였다. 그래서인지 IVE가 음악 방송 첫 1위를 하였을 때 가장 많이 울기도 하였다니다.
본인의 걱정과는 다르게 리더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2,3 IVE에서 안무 연습을 할 때 유진의 주도 하에 진행되었으며, 멤버들 한 명씩 디테일하게 봐주며 조언과 피드백을 해주었다. 또한, 4화에서 안무 연습 도중 레이가 몸이 좋지 않아 중간에 연습실을 나와 혼자 울고 있었을 때 유진이 다가와 위로를 해주며 멤버들을 잘 챙기는 모습을 또 한 번 보여주었답니다.
스튜디오 문나잇에서 진행한 ‘2021 아이브 왔상 시상식’에서 리즈가 ‘리더로서 멤버들 한 명 한 명 관심 가져 주고 잘 챙겨주는 게 보인다’는 이유로 안유진에게 ‘고마워요 항상’이라는 이름의 상[23]을 주었고, 레이는 ‘유진 언니가 IVE를 위해 너무나도 고생했고 항상 멋있는 짱 리더이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제일 멋진 리더 상’을 주었다. 이를 듣고 안유진은 고마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답니다.
SUPER JUNIOR의 IDOL vs IDOL에 출연하여 멤버들이 뽑은 브레인으로 선정되었다. 그 이유로 리더로서 각종 정보를 정리하고 의견을 전달하는 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멤버들이 선정해준 것 같다고 했다.[24] 똑부러지게 리더의 역할을 잘하는 중인 것으로 보인답니다.
리더를 맡기 때문에 스스로를 IVE의 '기둥 담당'이라고 말한다
- 보컬
공식적인 포지션이 없는 그룹이지만, IVE 내에서 핵심적인 보컬 멤버이자 메인보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로 언급된다. 스타쉽 관계자들이 뽑은 아이브에서 보컬이 특출난 멤버다. 데뷔곡 ELEVEN과 수록곡 Take it에서 모두 후렴구 애드리브를 맡았다. 특히 ELEVEN에서 저음 벌스, 후렴구, 고음 애드립 등 보컬적 역량이 필요한 파트를 훌륭하게 소화하며 리드보컬이었던 IZ*ONE 활동에서 한 단계 더 성장한 실력을 드러냈답니다
성량, 음역대, 발성 등이 준수한 데다 무엇보다 듣기 편안하고 장르를 크게 타지 않는 청아하고, 예쁜 음색을 가지고 있다. 음역대의 폭이 상당히 넓으며, 기본기가 탄탄해 정확한 음정과 리듬, 그리고 깔끔한 끝음 처리를 구사하며,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발성이 탄탄하게 잘 갖춰진 상태라 라이브 역시 안정적이며, 호불호가 잘 갈리지 않는 듣기 편한 음색이라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IZ*ONE으로 활동할 무렵 같이 작업을 했던 프로듀서 라이언 전이 안유진의 보컬 잠재력에 대해 극찬하기도 했답니다.
에너지가 굉장히 좋다. 저음부터 고음까지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는 보컬이랍니다.
IVE의 최초이자 유일한 복면가왕 참가자로[25], 2라운드까지 올라가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동안의 청량한 보컬 스타일과 다른 성숙한 창법을 통해 보컬 스타일에 대한 많은 고민과 성장을 보여주었답니다.
- 댄스
메인댄서 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팀 내에서 가을과 함께 댄스 포지션을 담당하는 멤버로 꼽힌다. IVE 데뷔 이후 연말 무대 댄스 브레이크, 커버 콘텐츠 고난도 파트 등에서 센터를 담당하였고, 리드댄서였던 IZ*ONE 시절에 비해 동작의 정확성과 파워가 더욱 성장했다. 안무가 채다솜이 뽑은 ELEVEN 안무를 가장 잘 소화하는 멤버이며, 특히 긴 팔다리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칭찬했다. 같은 멤버 리즈 또한 안유진처럼 춤을 추고 싶다고 했답ㄴ다.
특기는 걸스 힙합이고, 포지션 평가 때도 댄스였다. 프로듀스 48 당시 등급 재조정에서 춤은 이미 A라는 호평을 받고 등급이 상승했다. 포지션 평가에서 팀원들과 함께 창작 안무를 선보였으며[27], IZ*ONE 쇼콘 VCR에서 아이즈원 멤버들이 뽑은 제2의 댄싱퀸으로 뽑혔었답니다.
박자를 유연하게 타서 춤선이 상당히 깔끔하고 우아한 느낌인데, 긴 팔다리 덕분에 안무를 시원하고 힘 있게 소화한다. 눈에 띄는 춤선에 광고 모델 출신다운 성숙한 표정 연기를 더해 퍼포먼스를 완성시킨다. 덤으로 커버 댄스에도 능한 편이라 소속사 선배들의 안무는 물론 많은 보이그룹과 걸그룹의 안무를 숙지하고 있답니다.
- 특기
IZ*ONE 데뷔 이후엔 예비 MC로서의 끼를 인정받았는지 아이즈원의 마이크 담당이 되어 공식 행사나 인터뷰에 자주 얼굴을 비추고 있고, 아이돌룸 특별 MC를 시작으로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의 MC로 발탁되는 등 훌륭한 아이돌 MC의 길을 걷고 있으며, 또한 2021년 3월 7일부터 SBS 인기가요에 MC로 합류하였다. 진행력이 좋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독서를 평소에 취미로 하고 있어 기본적인 어휘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호구들의 감빵생활 출연 당시, 주어진 글자로 단어를 맞히는 '걸어서 단어 속으로' 게임에서는 다른 멤버가 다 오답만 외치는 와중에 유진이 혼자 쉴 새 없이 정답을 찾아냈다.[62] 퀴즈 위의 아이돌에서도 문제는 결국 못 맞혔으나, 나름의 문학적 소양이 있음이 보여지며, 초성퀴즈 역시 가장 막내인 장원영과 함께 최후의 2인으로 남을 정도로 호빵 때 보여준 어휘력이 운이 아님을 증명하였답니다.
인터뷰에서 밝히길 대부분의 운동들을 좋아한다고 하며, 실제로 각종 예능에서 이점을 어필한다. 특히 줄넘기와 달리기를 잘한답니다.
- 비주얼
큰 키의 비율도 좋으며 건강미가 상당하다. 또한 본인이 대부분의 운동을 좋아해서 자기관리를 즐겁게 열심히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건강미가 발전되어 가고 있답니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큰 키 때문에 전체적으로 성숙한 이미지를 주어 데뷔 전에도 여러 광고의 모델을 했을 정도로 비주얼과 피지컬이 준수하다. 배우상 아이돌로 언급되기도 한답니다
잘생쁨하면 유명한 여자 아이돌 중 한 명이다. 특히 같은 그룹의 가을, 이서와 함께 잘생쁨을 뽐내며 남팬뿐만 아니라 많은 여팬 또한 거느리고 있답니다.
- 2022년 8월 아이브의 근황은??
아이브(IVE)가 완벽한 비주얼 합을 선보였다.
아이브(안유진, 가을, 레이, 장원영, 리즈, 이서)는 8월 16일부터 18일 오후까지 공식 SNS를 통해 새 싱글 'After LIKE(애프터 라이크)'의 네 번째 콘셉트 포토를 순차적으로 게재했다.
포토 속 아이브는 앞서 공개한 상징 컬러와 함께 또 한 번 다채로운 무드를 발산했다. 먼저 가을은 블루 컬러가 돋보이는 레이서 복장과 포인트 액세서리로 스타일링해 쿨한 이미지를 선보였다. 이서는 발랄한 노란색과 양 갈래로 높이 땋은 머리를 찰떡으로 소화하며 Z세대의 당당하고 힙한 무드를 선사했다.
이어 공개된 레이는 그린 컬러와 함께 산뜻하고 청순한 비주얼을 선보였다. 또 다른 포토에서는 니트 소재의 크롭 투피스와 그린 계열의 액세서리로 스타일링해 포근하면서 개성있는 룩을 연출했다. 리즈는 풀뱅의 긴 흑발로 매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하늘색 컬러의 순수한 이미지를 동시에 드러내며 설렘을 자극했답니다.
마지막으로 안유진은 사랑스러운 핫핑크 의상을 착장하고 팬심을 겨냥하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 연기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안유진 특유의 맑은 눈빛과 밝은 미소, 건강한 이미지가 더해져 완벽한 비주얼을 완성했다. 장원영은 강렬한 레드빛 공간에서 순백의 원피스와 올림머리로 스타일링해 청순섹시한 무드를 물씬 풍겼다. 또 다른 포토에서는 레드와 화이트가 조화된 레이서 복장과 핑크빛으로 물들인 헤어로 파격적인 비주얼 변신을 선보였다.
이로써 아이브의 다채로운 매력이 가득 담긴 콘셉트 포토가 모두 공개된 가운데, 3일 앞으로 다가온 컴백 기대감 또한 고조되고 있답니다.
아이브의 세 번째 싱글 'After LIKE'는 사랑스럽고 우아한 '자기애'를 기반으로 자신감 넘치는 사랑의 태도를 주문한다. 동명의 타이틀곡 'After LIKE(애프터 라이크)'는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줄 테니 이제 마음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달라는 구체적인 사랑법을 노래한 곡으로, 작사가 서지음이 'ELEVEN(일레븐)'과 'LOVE DIVE(러브 다이브)'에 이어 아이브와 또 한 번의 시너지를 발휘했다. 또한 레이가 랩 메이킹에 참여해 음악적 성장을 증명할 예정이다.
한편 아이브의 세 번째 싱글 'After LIKE'는 오는 22일 오후 6시 각종 온라인 음원 사이트를 통해 발매된답니다.
지난 2019년 12월 13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신상출시 편스토랑'에서는 이정현이 새로운 편세프로 합류, 처음 등장했다. 결혼 후 첫 고정 예능 출연인 그는 이날 신혼집을 최초 공개했다.
결혼 8개월 차인 이정현의 신혼집은 깔끔하고 심플한 인테리어를 자랑했다. 햇살이 한가득 들어오는 널찍한 거실을 비롯해 모던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침실, 놋그릇, 도자기 그릇이 가득 채워진 주방도 눈길을 끌었다.
이날 이정현의 남편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정현과 전화통화로 목소리만 등장했지만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낸 것. 이정현의 남편은 3세 연하의 대학병원 정형외과 전문의로 두 사람은 지난 4월 백년가약을 맺었답니다.
아침부터 출근한 남편에게 전화한 이정현은 "자기야 잘 갔어? 뭐가 제일 맛있었어?"라며 "음식물 쓰레기 하나도 없던데? 가시도 먹은 거야?"라고 애교 가득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이정현에 남편도 "다 맛있더라. 싹 긁어먹었다"라며 화답했고, 이를 들은 이정현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무대 위 카리스마와 달리 애교 넘치는 이정현의 모습은 패널들의 부러움과 야유를 동시에 사기도 했습니다.
- 2021년 12월 이정현의 임신 소식
배우 이정현 엄마된다.
이정현은 7일 유튜브 채널 ‘이정현의 집밥레스토랑’을 통해 “여러분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어 영상으로 인사한다.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식구가 찾아왔다. 사랑스러운 아기가 찾아왔다”고 임신 사실을 알렸다.
이정현은 “입덧이 심해 콘텐츠 업로드하지 못 했다. 양해 부탁한다. 입덧이 너무 심해 물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이 세상 어머니들의 존경스럽고 위해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며 “아직 입덧이 남아 새로운 콘텐츠 업로드는 당분간 불가능할 것 같다. 새롭게 인사할 때에는 좋은 콘텐츠로 찾아뵙겠다”고 전했다.
이정현은 2019년 4월 7일 3살 연하 정형외과 전문의와 결혼했다. 결혼 발표 당시 소속사에 따르면 이정현과 남편은 약 1년간 교제 끝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이정현은 성실하고 자상한 품성을 지닌 지금의 남편과 평생 함께할 것을 약속했ㄷ바니다.
당시 이정현은 “영원히 일만을 사랑할 것 같았던 나인데, 부족한 내게 한없는 용기와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평생 함께 하고픈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됐다”며 “사랑하는 남편은 전문직 비연예인으로 우리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제2의 인생의 막을 올려 행복하게 살아가려 한다”고 했다.
결혼 이후에는 단란한 신혼 생활을 공개했다. 이정현은 KBS 2TV ‘신상출시 편스토랑’을 통해 자상한 남편을 공개했으며,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가정주부 이정현으로서의 범상치 않은 요리 실력을 뽐내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이정현 부부에게 아이가 찾아오면서 이들인 새 생명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1996년 영화 ‘꽃잎’으로 연예계 입문한 이정현은 1999년 1집 앨범 ‘Let's Go My Star’로 가수로 데뷔하면서 대중에게 이름을 제대로 알렸다. ‘와’, ‘바꿔’, ‘너’, ‘줄래’, ‘미쳐’, ‘반’, ‘아리아리’ 등 파격적인 콘셉트의 곡들로 일약 ’테크노 여전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답니다.
배우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 영화 ‘범죄소년’, ‘명량’,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군함도’ 등에 출연하면서 여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이정현은 2015년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16년 제3화 들꽃영화상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답니다.
또한, 이정현은 ‘1세대 한류스타’로도 통한다. 중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가수이자 배우로 현지에서도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 프로필 이력 경력
출생 나이 생일 1980년 2월 7일 (42세) 고향 출생지 전라북도 김제시
신체 키 혈액형 158cm, 43kg, O형 가족 아버지 이길술(1933년생), 어머니 노재순 4녀 중 막내 남편(1983년생, 2019년 4월 7일 결혼 ~ 현재) 딸(2022년 4월 20일생)
1996년의 영화 <꽃잎>으로 데뷔했다. 연기를 처음 해보는 10대 소녀라고는 믿기지 않는 빼어난 연기를 펼치며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고, 대종상, 청룡영화상을 비롯한 다수의 영화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거머쥐며 단번에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1999년 1집 <Let's Go To My Star>를 발표하며 가수로 변신, 이 음반의 타이틀곡 '와'가 빅 히트하며 이 해 거의 모든 가요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었고, '테크노 여전사'란 별명을 얻으며 전국을 테크노 열풍으로 술렁이게 했다. 이후에도 '바꿔', ''너', '줄래', '미쳐', '반', '아리아리' 등 여러 곡을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2000년대 초반 국내 인기 정상급 가수로 여겨졌다.[8] 특히 시대를 앞서간 파격적인 콘셉트와 퍼포먼스를 잇달아 선보여, 대중들로부터 레이디 가가에 비견되기도 한답니다.
2000년대 중후반에는 주로 중국에서 한류 스타로서 활발히 활동했으며[9] 2010년대부터는 국내에서 연기에 주력하면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 등 배우로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답니다.
- 주목받았던 연기 활동
1996년 4월 개봉한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의 주인공 소녀 역으로 전격 데뷔. 3000대 1의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었다.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오디션에 응했다고 한다. 당시 영화 스탭과 관계자들은 대부분 이정현의 섭외를 반대했었는데, 이유는 연기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 장선우 감독의 명성은 대단하던 시절이었고 <꽃잎>은 당시로서는 상당한 자본이 들어간 대작인데다 소재부터가 기획 당시부터 큰 주목을 받던 작품인데, 그런 영화의 주인공 역이니 연기 좀 했다는 아역 연기자들이 오디션에 몰려들었던 터라 더욱 그랬다. 그러나 시나리오상 소녀의 이미지와 딱 들어맞는 이정현의 외모와 범상치 않은 끼를 높이 평가한 장선우 감독이 이정현을 적극 밀어 결국 캐스팅되었답니다.
그 뒤 첫 촬영이 시작되었으나, 이정현은 경험 부족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얼어붙고 말았고, 장선우 감독은 대본을 집어던지며 본인이 뽑아놓고선 "쟤 누가 뽑았어!"라고 소리치며 첫 촬영을 접어버렸다. 이에 충격을 받은 이정현은 그날 밤 숙소에서 울다가 '연기는 어차피 잘 못하는게 당연하니 연기를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내가 그 소녀 자체가 되자'고 결심, 다음날부터 평소에도 미친 소녀처럼 지내기 시작했고, 이후로는 장선우 감독도 더이상 손대지 않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촬영지 인근의 주민들이 이정현을 보고 정말 미친 소녀인줄 알고(...) 이정현을 데려다가 씻기고 밥을 먹였다는 일화도 있답니다.
촬영기간 내내 그렇게 지내는 이정현에게 장선우 감독과 문성근, 설경구 등 출연 배우들이 "촬영 끝나면 원래의 너로 돌아가야 된다"고 수시로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 메소드 연기 문서에 나오듯이, 이 방식에 너무 집중하면 오히려 배우가 배역에 '잡아먹혀서' 일상 생활에 지장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이정현은 아직 정신적으로 예민한 청소년이었다. 다행히 촬영이 끝난 뒤엔 별다른 문제 없이 원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답니다.
영화에서는 희극에나 나올 법한 광년이 같은 소녀가 광기를 품은 채, 5.18 민주화운동의 비극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이 때 이정현은 전라 노출까지 감행하는 등 엄청나게 독기 어린 연기를 보여 주었다. 이 때 모난 돌로 어깨부터 허리까지 전면을 대각선으로 긁으며 자해하는데, 야한 장면과는 거리가 멀며 정말 소름끼친다.
영화 초반부에서 장을 따라가려 하는 소녀에게 장이 '"미친년아 꺼져!"라는 뉘앙스의 말을 외치며 돌을 던지는 장면이 있다. 물론 소녀를 쫓으려는 장면을 위한 연출. 그런데 장 역할의 문성근이 던진 돌이 이정현의 다리에 실제로 맞아 버렸다. 영화상에서는 편집을 하지 않고 넘어갔기에 절뚝이며 문성근을 쫓아가는 이정현을 보며 연기력이 일품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문성근이 처음 던진 작은 돌과는 달리 2번째로 던진 돌은 화면에서도 뚜렷이 보일 정도인데 약 어른 주먹의 절반 정도 크기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주의 깊게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처음 문성근이 던진 돌에 이정현이 진짜로 깜짝 놀라서 왼쪽으로 피하고, 문성근은 이정현을 피해서 재차 짱돌을 던진다. 그러나 진짜 놀라버린 이정현은 갈팡질팡하다 문성근이 돌을 던진 방향으로 이동, 다리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때문에 다리에 가해진 심한 충격으로 쓰러지게 되고, 다리에 맞은 돌은 이정현의 키만큼 튀어 오른다. 그러나 어떻게든 영화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지 실제 절룩이는 발을 끌며 문성근을 쫓아간다. 그러면서도 너무 아팠는지 쫓아가다 쓰러지고 휘청거리는 등 안쓰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답니다.
또한 영화 중반부에 기차 유리창에 비친 여자 귀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그 유리를 머리로 깨고 기절하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로 머리로 깼고, 정말로 기절한 것이다. 원래는 CG로 깨진 모습을 처리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즉 잘 깨지는 특수유리가 아닌 진짜 기차 유리를 깬 것. 그리고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소녀의 무덤가 발작 씬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회자되는 명장면이랍니다.
이런 신들린 듯한 열연에 힘입어, 겨우 만16세의 나이에 생애 첫 연기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96년도 대종상에서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 후보에 동시에 올랐다. 결과적으로는 주연상은 수상하지 못했지만 대종상, 청룡영화상을 포함한 각종 영화상의 신인상을 수상했고, 대종상 같은 메이저 영화상에서 주연상과 신인상 두 부문에 동시에 노미네이트된 케이스는 그 전이나 후나 매우 드물다.
같은 해 MBC 드라마 <가슴을 열어라>와 <일곱 개의 숟가락>에 출연했다. <일곱 개의 숟가락>은 이정현의 드라마 첫 주연작으로, 이정현과 함께 홍경인, 김소연 등 당시 신인급 배우들을 주력으로 내세웠음에도 동시간대 타 방송사 드라마들을 압도하는 호성적을 냈다. 여기서 이정현은 착하고 굳센 소녀가장 역할을 잘 소화해 내며, <꽃잎>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청소년 관람불가라 관람이 제한적이었던 <꽃잎>보다도 이 드라마로 이정현을 처음 기억하는 사람도 많답니다.
이어 1997년 9월 개봉한 선우완 감독의 영화 <마리아와 여인숙>[14]에도 출연하였다. 당시 <은행나무 침대>로 여성들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했던 신현준이 부모의 불륜으로 폐쇄적인 인간이 되어버린 역할을 연기하여 화제를 모았고, 김상중은 지능지수가 7살인 형 역할로 나왔으며, 심혜진은 이들 형제를 유혹하여 여인숙을 차지하려는 역할을 맡았다. 시대적 배경의 어두운 면(영화 내용상 배경연도가 1980년~90년 초반인걸로 예측된다.)과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부각시켰는데, 이정현은 마리아의 성장한 모습으로 특별 출연하며, 함께 출연한 박상민과의 장면이 있답니다.
영화의 작품성도 좋은 편이었지만 하필 한석규, 전도연의 <접속>과 신은경의 <노는 계집 창>과 함께 추석에 개봉하는 바람에 흥행 스코어에서 아쉬운 성적을 내고 말았다. 명절 연휴엔 부담스럽지 않게 관람하는 영화가 인기가 많은데, 이 영화는 명절영화라고 하기엔 관객들에게 쉽게 먹힐 영화가 애당초 아니었는데도 마케팅을 단순히 '에로틱'으로만 맞추다 보니, 본의 아니게 흥행스코에서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1998년에는 KBS 드라마 <야망의 전설>과 SBS 드라마 <어느날 갑자기>에 출연. 1999년에는 영화 <침향>[17]에, 2000년에는 영화 <하피>[18]에 출연했지만 두 영화 모두 비평적, 흥행적으로 크게 실패했다.
2001년에는 SBS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에 김세나 역으로 출연했다. 이 드라마는 당시 최고 시청률 30%대를 기록하며 많은 인기를 끌었고, 이후 일본에서도 히트하며 이정현이 일본에 진출하는 교두보가 되기도 한답니다.
2003년에는 중국 베이징TV 드라마 <미려심령>에 주인공 쳉후이(程慧) 역으로, 2006년에는 일본 TBS 한일 합작 드라마 <윤무곡~론도>[20]에서 최윤희 역으로 출연하였다. 두 작품 모두 멜로물로, 국내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이정현의 청순가련 연기를 볼 수 있다.
2008년 KBS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에 세종대왕의 후궁 신빈 김씨 역으로 7년만에 국내 드라마에 복귀했지만, 성대결절로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2010년에는 중국 CCTV 대하드라마 <공자>[22]에 위나라 왕후 난쯔(南子) 역으로 출연했다. 이 드라마는 2011년 중화TV 채널을 통해 국내에서도 방영되었답니다.
2011년 박찬욱, 박찬경 감독의 단편영화 <파란만장>에 출연하여 신들린 무당 연기를 보여주며, <하피> 이후 11년만의 영화계 복귀를 알렸다. 이 작품 이후 박찬욱과의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2013년 'V'의 뮤직비디오를 박찬욱, 박찬경 감독이 노개런티로 찍어주기도 했고, 이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와 <군함도>에 이정현이 출연하는 데에도 박찬욱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고 한다. 이정현도 박찬욱에 대해 다시 연기를 할 수 있게 해 준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본래 파란만장의 배역에는 문소리가 캐스팅되었고 실제 촬영을 시작했으나, 시작한 직후 문소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촬영을 중단했다. 물가에서 낚시줄에 걸려 끌려오는 장면이나 물 속에서 발작하는 장면 등 임산부가 연기하기엔 매우 거친 연기가 많았기 때문. 박찬욱 감독은 급히 대체 배우로 이정현을 섭외했는데, 그녀는 전화로 촬영을 승낙하고 몇시간 뒤에 곧바로 물가에서 뒹굴며(...) 연기를 했다. 파란만장 메이킹 필름 영상을 보면 촬영 환경이 장난이 아님을 알 수 있답니다.
2012년에는 영화 <범죄소년>에 16살 아들을 둔 33살의 철부지 미혼모 장효승 역으로 출연, 여러 국제영화제를 포함한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며, 그 동안의 국내 연기활동 공백을 아쉬워하는 반응도 많았다. 이 당시 공형진이 본인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정현을 두고 "이런 배우가 그동안 작품을 많이 안 했다는 것은 관객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하기도 했다.
사실 이정현의 필모를 보면 배우로서 최고의 성장기라 할 수 있는 20대 시절을 통째로 날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1년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 이후로는 중국, 일본 드라마에서만 몇년에 한번씩 가뭄에 콩나듯 연기했을 뿐이고, 영화는 아예 없었으며, 유일한 국내드라마 출연작이었던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별 활약도 못하고, 성대결절로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중국 드라마는 다른 배우들은 중국어로, 이정현만 한국어로 연기한 후 전문성우가 중국어 더빙을 덮는 식으로 찍은 것이었으니 반쪽짜리 연기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20대 내내 제대로 된 연기활동이 사실상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이후의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이 당시 이정현이 원하는 배역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서 출연 자체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나마 들어오는 배역도 공포 영화의 귀신 역 같은 배역인데 이건 이정현 본인에게 맞지 않았다고. # 여기엔 당시 가수 활동으로 인해 생긴 이미지 고착화도 원인 중 하나로 추정한다. 발표곡인 '와', '바꿔', '너' 등을 통해 이정현은 대단히 파격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구축했는데, 이게 가수로서는 크게 성공한 원인이 되었지만 배우로선 이미지가 굳어버리는 원인이 된 것. 그러다가 영화로 복귀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바로 위에 언급한 박찬욱, 박찬경 형제의 파란만장이었다. 그래서 이정현은 박찬욱 감독을 은인처럼 각별하게 대한다고.
2014년에는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에 정씨 여인 역으로 출연,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다만 연기력과는 별개로, 이정현이 맡았던 정씨 여인 캐릭터 자체는 평이 갈렸다. 가장 인상적이고 눈물나는 장면을 연출했다는 호평도 있었던 반면, 엄연히 전쟁영화에서 극의 긴장감을 끊고 작위적인 감동을 주려는 불필요한 캐릭터였다는 비판도 많았다. 이후 그 김한민 감독과 열애설이 떴답니다.
2015년 SBS 드라마 <떴다! 패밀리>의 여주인공 나준희 역으로 출연했다. <대왕 세종> 이후 6년여만의 브라운관 복귀였지만, 시청률은 타 방송사 드라마에 밀려 참패. 그래도 커리어의 첫번째 로맨틱 코미디물로, 배우 이정현의 색다른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여동생 연기, 공항 격투신, 여자친구인 척 하기, 술 취한 연기, 신입사원 연기, 기억상실 연기 등등
2015년 8월 개봉한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 주인공 정수남 역으로 출연했다. 영화가 개봉된 이후 줄곧 "이정현의, 이정현에 의한, 이정현을 위한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고, 노 개런티로 출연한 이 작품으로 2015년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수상 영상) 1996년 <꽃잎>으로 신인상을 받은 이후 19년 만의 청룡에서의 수상이며, 이 수상으로 12월 2일 SBS 나이트라인 초대석(영상)과 12월 3일 JTBC 뉴스룸(영상)에 출연하여 인터뷰를 가졌다. 2016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부문에도 노미네이트되었으나, 여기서는 <무뢰한>의 전도연에게 1표 차이로 아쉽게 수상을 놓쳤다. 영화가 개봉된 직후 작성된 "올해 여우주연상 이정현 확정"이라는 네이버 영화 평점란 베댓이 다시금 화제가 되는 등 많은 사람들에게 이정현을 다시금 '배우'로 각인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이랍ㄴ다.
2016년 11월 개봉한 영화 <스플릿>에서는 생계형 도박 브로커 주희진 역을 맡았다. 이정현의 영화 중에서는 처음으로 명랑하고 쾌활한 모습의 캐릭터. 그러나 너무나 평범하고 전형적인 '꽃받침 여주'에 가까운 캐릭터라 팬들로부터 "이정현답지 않은 선택"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많이 나왔다. 이정현이 빨간 립스틱에 빨간 하이힐, 가짜 명품으로 치장해 도박판에서 허세를 부리는 설정을 넣는 등의 노력을 하긴 했으나.. 반면 이정현 본인은 자신에게 잘 안 들어오는 평범한 역할이라 오히려 매력적이었고, 편안한 마음으로 촬영을 할 수 있어 좋았다고 밝혔다.
2017년 7월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고초를 겪는 조선 여인 오말년 역으로 출연했다. 촬영 당시 역할을 위해 체중을 36.5kg까지 감량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만 영화 자체는 상당한 혹평을 받았다. 동년 9월 개봉한 문소리 감독/주연의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에는 카메오로 잠깐 등장한다. 2019년 10월 여주인공 박선영 역으로 출연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두번할까요>가 개봉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2020년 7월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영화 <반도>에 여주인공 민정 역으로 출연하였다. <부산행>의 속편으로 큰 기대를 받은 영화였으나 작품 자체의 평은 좋지 않은 듯. 그러나 코로나 19로 인해 국내 및 세계 영화시장 자체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배급사가 발표한 국내 손익분기점 250만 관객수[24]를 11일만에 돌파하고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각지에서도 기존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경신하며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르는 등 흥행 면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2020년 9월 개봉한 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에 여주인공 소희 역으로 출연하였으며, 2022년 6월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 안정안 역으로, 8월 개봉 예정인 영화 <리미트>에는 주인공 윤소은 역으로 출연한답니다.
원진아는 8일 오전 화상 인터뷰를 통해 넷플릭스 '지옥'(감독 연상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옥'은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원진아는 송소현 역할을 맡아 박정민과 부부 연기를 펼쳤다.
데뷔 직후 드라마 여주인공 자리를 꿰차며 기대를 모았던 원진아는 어느새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믿고 보는 배우로 성장했다. 벌써 데뷔 5년차가 넘은 원진아는 쉬지 않고 활동하며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종횡무진 중이다. 원진아는 작품 활동만 집중하며 예능프로그램 등에서 편하게 보기는 힘든 배우 중 한명이다. 원진아에게 예능프로그램 출연 계획은 없는지 물었답니다.
원진아는 "연기에만 집중하려고 예능 프로그램을 피했던 것은 아니다"라며 "아직까지는 저라는, 원진아라는 배우에 대해서 좀 더 보여주고 싶었다. 배우로 저를 먼저 알리고 나중에 사람 원진아로서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직은 제가 배우로서 보여드리지 못한 모습이 많다"라고 밝혔다.
이어 원진아는 "조심스럽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예능을 한 번 해볼까 고민하다가, 작품이 들어오면 작품을 먼저 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기회가 생기면 예능도 해보고 싶다"라며 "저는 주로 아이들이 나오는 예능을 즐겨 본다. 그런 예능을 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라고 웃었다.
원진아는 "예능감이 있는 편인가"라는 질문에 "사실 그건 제가 판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며 "제가 눈치가 있는듯 없는 편이다. 그래서 게임 같은 것을 하는 프로그램에 나가면 이해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까 싶다. 한번 해보면 예능감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전했답니다.
'지옥'은 공개 후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비영어) 부문 정상을 차지했다. '지옥'은 공개 후 단 3일 동안 4348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한국은 물론 싱가포르, 홍콩,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자메이카, 나이지리아 등 총 12개국에서 TOP 10 1위를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인도, 미국, 프랑스, 독일 등 59여 개국에서 TOP 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켰다.
- 원진아 프로필 이력 경력
출생 나이 생일 1991년 3월 29일 (31세) 고향 출생지 충청남도 천안시
본관 원주 원씨 (原州 元氏) 신체 키 혈액형 163cm | 46kg | B형 | 250mm 가족관계 부모, 남동생 2명
학력 천안여자고등학교 (졸업) 호서대학교 (문화기획학 / 중퇴)
데뷔 2015년 단편영화 '캐치볼'
- 드라마 지옥에 대한 소감은??
배우 원진아가 '지옥'에서 남다른 모성애 연기를 펼치며 대중을 사로잡았다. 올해 초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로 로맨스 연기를 펼쳤던 원진아는 '지옥'에서 엄마로 변신, 그동안 보여준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여줬답니다.
'지옥'은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원진아는 극중 송소현 역할을 맡아 박정민과 부부 연기를 펼쳤습니다.
원진아는 '지옥'을 통해 연상호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췄다. 원진아는 연상호 감독과의 작업 소감에 대해 "연상호 감독님과의 작업은 너무 즐거웠다. 현장 분위기 유쾌하게 이끌어 주셨다. 연 감독님은 촬영을 하고 집중해야 되는 상황에서는 분위기를 잘 조절해주신다. 어느 부분 표현하는지 명확한 이야기 해주고, 힘을 빼지 않고 에너지 방전 시키지 않고 촬영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송소현은 자신이 낳은 신생아가 천사에게 고지를 받자,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과정에서 송소현은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인 모습보다 엄마로서 감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원진아는 송소현 캐릭터에 대해 답답해 하는 관객의 반응에 대해, 자신도 대본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고 그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원진아는 "내가 연기한 송소현은, 혼란스러운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보여주는 캐릭터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두려움을 떤다'이런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미워보일 수 있고, 답답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게 더 현실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저도 처음에 책(대본)을 보며 답답하기도 했다. 제가 느꼈던 그 답답함을 '지옥'을 보는 사람들도 그대로 느끼길 바랐다. 그래서 제가 느낀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원진아는 "송소현은 처음에는 미숙하지만 나중에는 성장하는 사람이고 너무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 인간적인 부분도 사랑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느낀 그대로 밀고 나갔다.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도 있었지만, 현장에서 촬영하며 해결되는 부분이 많았다. 촬영장 세트나 미술적인 부분에서도 도움을 받았다. 송소현이라는 캐릭터 자체를 이해할 수 있냐고 한다면 잘 모르겠다. 저는 저 원진아라는 사람을 그 상황에 대입해서 그 감정을 생각했고,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표현했다"라고 설명했답니다.
송소현은 남편 배영재(박정민 분)와 극 말미 죽음을 맞는다. 원진아는 시즌2 출연 여부를 묻는 질문에 "시즌2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송소현과 배영재는 죽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저는 두 사람도 부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그래서 촬영 현장에서도 연상호 감독님께, 우리도 살아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잘 모르겠다. 송소현과 배영재는 살아나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하시더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라고 웃었다.
데뷔 직후 드라마 여주인공 자리를 꿰차며 기대를 모았던 원진아는 어느새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벌써 데뷔 5년차의 원진아는 쉬지 않고 활동하며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종횡무진 중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활발한 원진아지만, 예능프로그램 등에 출연하거나 개인적인 편안한 모습을 보여준 적은 많지 않다. 실제 그녀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답니다.
원진아는 "연기에만 집중하려고 예능 프로그램을 피했던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저라는 사람보다는, 원진아라는 배우에 대해서 좀 더 보여주고 싶었다. 배우로 저를 먼저 알리고 나중에 사람 원진아로서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직은 제가 배우로서 보여드리지 못한 모습이 많다"라고 밝혔다. 이어 원진아는 "조심스럽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예능을 한 번 해볼까 고민하다가, 작품이 들어오면 작품을 먼저 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기회가 생기면 예능도 해보고 싶다"라고 포부를 전했다.
원진아는 "저는 주로 아이들이 나오는 예능을 즐겨 보는데, 그런 예능을 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라고 웃으며 "제가 예능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그건 제가 판단할 수 있는게 아닌 것 같다. 제가 눈치가 있는듯 하면서 없는 편이다. 그래서 게임 같은 것을 하는 프로그램에 나가면 이해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까 싶다. 한번 해보면 예능감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해 기대를 더했다.
원진아는 올해 연말 개봉하는 영화 '해피 뉴 이어'로도 관객을 만난다. 또 현재 배우 도경수와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촬영하고 있다. '지옥'에서 모성애 연기를 펼친 원진아가 또 다른 작품 속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그녀의 새로운 모습이 기다려진답니다.
26일 오후 8시 첫 공개되는 쿠팡플레이 시트콤 '유니콘' 1, 2화에서는 K-스타트업의 절대금기라 불리는 피보팅(기존 사업 아이템을 다른 것으로 전환하는 것)을 시도하는 광기서린 '맥콤'의 CEO 스티브(신하균 분)와 이를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맥콤 크루들의 사투가 펼쳐질 예정이다.
공개된 스틸에는 CEO와 직원들이 규칙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 받는 '타운홀 미팅'을 진행 중인 K-스타트업 맥콤의 모습으로 눈길을 이끈다.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 '스티브'와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지쳐 보이는 크루들의 뒷모습은 벌써부터 삐그덕거리는 이들의 오묘한 케미스트리를 엿보게 하는 가운데, '스티브'가 이들을 한데 불러모은 까닭이 무엇일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위풍당당한 '스티브'를 분노의 눈길로 쳐다보는 맥콤의 유일무이 우수사원 애슐리(원진아 분)의 표정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웃음을 터트린다. '애슐리'를 분노하게 한 '스티브'의 파격 선언은 무엇일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동시에 이를 반대하고 나선 그녀의 활약에도 관심이 쏠린다. '스티브'가 클럽하우스 특채로 데려온 제이(이유진 분)의 당황한 모습도 눈에 띈다. 첫 출근부터 고단한 회사생활이 예상되는 '제이'가 대혼돈의 맥콤에 적응할 수 있을지 기대된답니다.
한편 무당집에 찾아간 듯한 스티브와 애슐리, 제이의 모습이 포착됐다. 무당과 마주보고 선 '스티브'의 눈빛에서 비장함마저 느껴지며 긴장감을 더하는 가운데, 이들이 무당을 만나러 간 사연이 무엇일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어 맥콤 크루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이것의 정체가 과연 맥콤에 찾아온 위기일지, 혹은 기회일지 수많은 추측을 낳게 한다.
한편 '유니콘'은 26일을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 오후 8시 쿠팡플레이를 통해 만날 수 있답니다.
- 원진아의 결혼과 이상형은??
배우 원진아가 솔직하고 거짓없는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밝혔다.
원진아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인터뷰에서 함께 작업한 배우들 중 이상형에 있느냐는 질문에 "특별히 없다"며 이 같이 밝혔답니다.
그러나 캐릭터 이상형으로는 주인공 장세출을 언급한 그녀는 "실제로 만나게 되면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은 우연한 사건으로 일약 시민 영웅이 된 거대 조직 보스 장세출(김래원)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내용. 원진아는 극중 불의를 참지 않는 열혈 변호사이자 조직 보스 장세출을 반하게 하는 강소현 역을 맡았다. 오는 19일 개봉이랍니다.
둘의 시상식은 '두산의 홈 경기가 열리는 23일'로 정해졌고, 두산은 홍성흔과 니퍼트를 그리워하는 팬들을 위해 판을 키웠다.
홍성흔과 니퍼트는 이날 경기 전 '팬 사인회'를 열었답니다.
이어 니퍼트는 마운드, 홍성흔은 홈 플레이트 뒤에 앉아 시구와 시포를 했다.
두산 팬들에게는 무척 특별한 선물이었다.
홍성흔은 1999년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두산에 입단해 롯데와 두산에서 1천957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1, 208홈런, 1천120타점을 올렸다.
유쾌한 입담과 친근한 팬 서비스로 경기장 밖에서도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니퍼트는 2011년 두산과 계약하며 한국 무대에 섰고, 2018년까지 102승 51패 1홀드 평균자책점 3.59로 활약했다.
두산에서는 7시즌(2011∼2017년) 연속 에이스로 활약하며 94승 43패, 평균자책점 3.48을 올렸다.
니퍼트와 홍성흔은 2013∼2016년, 4시즌 동안 두산에서 함께 뛰었지만 '배터리'를 이루지는 않았다.
당시 두산의 주전 포수는 양의지(NC 다이노스)였고, 홍성흔은 지명타자로 뛰었다.
두산의 색이 짙은 홍성흔과 니퍼트는 '레전드 40인 시상식'이 열리는 날, 드디어 배터리로 합을 맞췄다.
5회말이 끝난 뒤 홍성흔과 니퍼트는 다시 그라운드에 등장해 '레전드 40인 기념 트로피'를 받았답니다.
홍성흔은 "(은퇴한 뒤) 6년 만에 다시 그라운드에 선다. 다시 팬들을 뵈니 기쁘다"며 "나는 실력보다 포장이 잘 된 선수인 것 같다. 팬 여러분 덕에 이렇게 영광스러운 자리에 섰다"고 겸손하게 소감을 밝혔다.
니퍼트는 눈물을 흘리며 "한국에서 뛸 기회를 준 두산과 kt 구단에 감사하다. 나를 응원해주신 팬들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감사 인사를 했답니다.
- 지난 2016년 시상식에서 자신의 재혼 아내 부인 와이프에 대해서 언급했던 니퍼트
두산 니퍼트(35)가 최우수선수(MVP) 인터뷰 도중 뒤편에 앉아 있는 아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한국말로 또렷하게 "여보 사랑해"라고 말했다. 203㎝의 '키다리 아저씨'가 이날만큼은 울보가 됐다.
니퍼트는 14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KBO 리그 시상식의 최고 주인공이었다. 다승(22승), 평균자책점(2.95), 승률(0.880, 22승 3패) 1위로 3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시상식의 하이라이트 MVP 발표만 남겨 놨고, 최종 후보는 2명으로 압축됐다. 잠시 뒤 수상자로 니퍼트의 이름이 호명됐다. 그는 816점 만점에 642점을 얻어 타율(0.376)과 타점(144개), 최다안타(195개) 1위를 차지한 최형우(삼성·530점)를 112점 차로 제치고 MVP를 수상했다. 니퍼트는 "쟁쟁한 MVP 후보들이 있는 데다 선발투수가 MVP를 받는 게 쉽지 않아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투수 MVP는 2011년 윤석민(KIA)에 이어 5년 만이고, 외국인 선수로는 우즈(1998년), 리오스(2007년), 테임즈(2015년)에 이어 네 번째다.
KBO는 올 시즌부터 MVP 투표를 1위부터 5위까지 다섯 선수에게 8점, 4점, 3점, 2점, 1점을 각각 부여해 합산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니퍼트는 역대 외국인 투수 한 시즌 최다승 타이, 역대 최소 경기 20승, 팀 통합 우승 등이 플러스 요소로 작용했답니다.
니퍼트는 이날 투수 3개 부문과 MVP 수상으로 두 차례 무대 단상에 올랐는데 모두 눈물을 보였다. 그는 "팀 동료들을 향해 흘리는 눈물이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생업으로 삼을 수 있는 자체가 매 순간 감사한데 이런 자리에서 상까지 받게 돼 고맙다"고 말했다.
니퍼트는 특히 '아내'와 '두산'에 여러 차례 감사를 나타냈다. 지난해 말 한국인 여성과 결혼식을 올린 그는 당초 10일 발리로 신혼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상식 참가를 위해 일정을 앞당겼고, 이날 아내와 함께 시상식에 참석했다. 아내는 니퍼트가 무대에 서 있는 동안 휴대전화로 사진과 동영상을 연신 찍었다.
니퍼트는 아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드러냈다. "나와 아내를 향한 인터넷 댓글을 봤는데 나쁜 내용이 많았다. 당사자인 나는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전처와 두 자녀를 두고 한국인 여성과 재혼한 것에 대한 팬들의 악성 댓글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니퍼트는 외국인 선수로 KBO 리그에서 벌써 6시즌째 뛰고 있다. 그는 "나처럼 나이가 조금씩 들어 가는 선수가 이렇게 완벽한 팀에서 뛴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KBO 리그에서 성공적으로 활약한 것은 훌륭한 팀과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산이 아니라 다른 팀이었다면 이런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니퍼트는 미국 오하이오주 빌스빌이라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 출신이다. 어릴 때 "너는 (훌륭한 프로야구 선수를) 해내지 못할 것이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꿈을 키웠다. 그는 한국 무대에서 '성공 신화'를 썼다. 최고 영예의 상을 받았고, 내년이면 KBO 리그 장수 외국인 선수 중 1명이 된다. 지금까진 1999~2002년, 2004~2006년 한화에서 7시즌을 뛴 데이비스가 가장 오랫동안 한국 땅을 밟았답니다.
니퍼트는 "KBO 리그가 나의 커리어를 연장해 줬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다"며 "올 시즌을 돌아보며 '잘했다'고 말하면 뭔가 포기하는 기분이다. 내년에 더 잘하겠다. 매일 거울 앞에서 '오늘 열심히 했다'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아직 두산에 제공할 게 많다"고 얘기했다.
- 니퍼트 프로필 이력 경력
출생 나이 1981년 5월 6일 (41세) 고향 출생지 웨스트버지니아
학력 빌스빌 고등학교 - 오하이오 밸리 대학교 -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 신체 키 혈액형 203cm, 105kg, A형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2년 드래프트 15라운드 (전체 459번 / ARI)
소속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5~2007) 텍사스 레인저스 (2008~2010) 두산 베어스 (2011~2017) kt wiz (2018)
등장곡 Skillet - Awake and Alive 가족관계 아내, 슬하 1녀 3남
- 평가
KBO 리그 외국인 투수 최초 100승, 1000탈삼진을 기록한 투수이며, 2010년대 KBO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 중 한 명이자 KBO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투수로 평가받는다.
두산 베어스에서의 7년 동안 두산 팬들은 물론 모든 야구 팬들에게 인정받는 외국인 투수였으며, 실력과 인성 모든 게 빛났던 두산의 영원한 1선발.[4]
두산에서 활약할 동안 두산 팬들에게서 니느님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고, 팀 내에서 니퍼트의 상징성은 날로 커져만 갔다. 그렇게 무려 7년간 두산의 최고 에이스로 활약하였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두산과의 이별이 찾아왔다. 원인은 노쇠화에 따른 기량 하락이었다.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KIA에게 패해 준우승한 이후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 제패를 노리는 두산에서 그간 함께한 니퍼트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새 외인 조쉬 린드블럼을 영입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니퍼트는 두산과 작별하게 되었답니다
이후 kt wiz의 김진욱 감독이 니퍼트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렇게 kt wiz로 이적하여 1년 동안 기량 하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kt의 에이스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비슷한 이유로 재계약에는 실패했고, 2018 시즌을 끝으로 KBO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 사실상 은퇴하였답니다.
니퍼트가 7년 동안 베어스에 끼친 영향력과 헌신을 생각하면 은퇴식은 물론이거니와 영구결번의 영예를 얻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니다. 정규리그 MVP, 다승왕, 평균자책점 1위를 모두 경험해봤고, 매년 1선발로서 제 역할 그 이상을 해주었던 투수였던 점을 감안하면 팀 레전드로서의 자격도 충분하다. 하지만 그가 은퇴한지 어느덧 3년이 지났음에도 영구결번은커녕 성대한 은퇴식도 치러지지 못한 상황이랍니다.
- 은퇴 이후
니퍼트 빅드림 야구 아카데미
현재는 대한민국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2020년에 '니퍼트 빅드림 야구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감독이자 코치로서 야구교실을 직접 운영하고 있답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도 간간히 출연하며 근황을 알리고 있다.
2022년 3월 말부터 MBN 야구 예능 빽 투 더 그라운드에서 고정멤버로 합류해 에이스 투수로서 대활약하고 있다. 아직까지 구속이 140km 중반 이상이 나오고 있어 현재도 몸관리에 매우 철저한게 대단하다며 팬들의 칭찬이 이어지고 있는 중.
- 플레이 스타일
2016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찍은 153km/h 패스트볼이랍니다.
선수들이 뽑는 선동열 다음인 최고의 직구로 꼽힐 정도의 강력한 패스트볼을 가지고 있다. 2m가 넘는 큰 키, 최고 158km/h의 패스트볼은 살인무기 수준. 특히 하이 패스트볼과 타자의 몸쪽으로 꽂아넣는 패스트볼이 주무기다. 국내에서는 이 정도의 높이를 가진 선수가 극히 드물다 보니 타자들이 더욱 어려움을 겪는 것도 있다. 혹자는 공을 2층에서 던지는 것 같다 하기도. 평균 구속은 140km/h대 중후반~150km/h대 초중반 정도랍니다.
회전수는 2600rpm이다.'''2017시즌 9월 중후반부터의 스포츠 기사들을 살펴보면 대다수의 기자들이 니퍼트의 회전수가 2500rpm이하로 떨어졌다고 하면서 니퍼트의 부진 이유를 회전수 감소로 꼽았다. 그래도 리그 전체의 선발 투수들 중 패스트볼 회전수는 1위인 걸 보면 KBO 최정상급 구위인 것은 확실하다. 다만 투심을 던지듯이 회전축이 수직이 아니어서 키가 커도 상하 무브먼트는 유희관보다 적답니다.
변화구는 슬라이더와 서클 체인지업, 너클커브를 가지고 있으며 우타자를 상대로는 슬라이더를 많이 던지고, 좌타자를 상대로는 체인지업을 더 많이 던진다. 거기에 간간히 느린 커브도 섞는다. 슬라이더는 130km/h대에서 형성되며, 체인지업도 비슷한 정도의 속도. 특히 슬라이더는 2016년 기준으로 마구에 가까운 기록을 나타내고 있는데, 2016년 9월 3일 기준으로 피안타율 0.103, 피출루율 0.180, 피장타율 0.112, 피OPS 0.292라는 어마무시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어지간한 타자의 타율 수준의 OPS를 기록하고 있는 셈이랍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불안한 제구력으로 비판받았으나, 비교적 강타자가 적어 피해가는 피칭의 필요성이 적어진 한국에서는 9이닝 당 볼넷이 약 3개 수준으로 준수한 제구력을 보여주고 있다. 가끔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무한 볼질을 할 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제구로 비판받지는 않는 스타일.
한국에서의 연차가 쌓이면서 경험도 늘고 그만큼 한국 타자들을 상대로 한 수싸움에 능해졌다. 실점 위기에 몰려도 곧잘 삼진을 잡아내는 위기관리 능력이 일품. 같은 팀 동료인 장원준의 이야기에 따르면 평상시 니퍼트는 70 내지 80% 정도의 힘으로 던지다가 주자가 나가면 100%의 힘으로 전력투구를 한다고 한다.
니퍼트가 뛸 땐 같은 팀에 금강불괴 이닝이터 토종 선발이 둘이나 있었기에 이 관련에서는 잘 언급이 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 쪽도 만만찮게 천생 선발 체질이다. 불펜 니퍼트는 니레기라고 두산 팬들이 대놓고 말 할 정도. 실제로 불펜으로 나오면 작가님 저리가라 할 수준의 집필 능력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3년 준플레이오프 5차전 9회 2사에서의 블론세이브였다. 그 외에도 2015년에도 목동 넥센전에서 불펜으로 올라왔다가 망했답니다.
- 여러 여담들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2011년부터 매년 좋은 성적을 올리며 꾸준히 두산의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어서, 당연히 두산 팬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도 니퍼트는 니느님으로 불리며, 타팀 팬 사이에서도 어지간해서는 절대 까이지 않습니다.
독일계 미국인으로 WBC에서 독일 대표 출전 역시 가능하지만 문제는 독일 야구 실력이 축구 실력과는 반비례한다는 점이랍니다.
KBO에서 뛰고 있는 외인들 중 유일하게 팀 내 유니폼 판매량이 순위권에 들어간다고 한다. 관련기사 이는 2015년 두산 유니폼 전체 판매량의 10% 가량을 차지하며, 두산의 전통적인 유니폼팔이 최강자라는 외야수 라인 김현수, 정수빈, 민병헌의 뒤를 잇는 순위이다. 민병헌과는 3~4위를 다투는 수준이라고. 외인 선수의 유니폼이 판매가 잘 안 되는 이유는 못 하면 3개월 만에 방출당하고, 잘 하면 일본이나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기 때문에 사기가 꺼려지는데, 니퍼트는 유일하게 성적도 꾸준하게 상위권을 찍는데다가 자신이 은퇴를 두산에서 할 것이라고 못박았기에 유니폼을 사도 장기간 입을 수 있어서였다. KT 이적 후에도 여전히 니퍼트 유니폼을 소지하거나 입고 오는 두산 팬들을 간간이 볼 수 있답닏.
니퍼트는 항상 이닝을 마친 후에 여타 바로 투수조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대부분의 선수와 달리 항상 야수들을 한 명 한 명 기다리고 맞이 하고나서야 제일 마지막으로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이 부분에서 니퍼트의 인성이 은연에 보이는 듯 하답니다.
203cm의 장신으로 사실 한국에 들어오기 전 자신이 가장 큰 선수라고 생각하면서 왔지만 정작 같은 팀에는 4센티미터가 더 큰 선수가 있었다. 이렇게 큰 키 때문에 니퍼트는 공을 2층에서 던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덤으로 신체비율이 좋은 편인데. 팔과 다리도 키에 걸맞게 길쭉길쭉하고 머리는 또 작아서 9등신에 가까운 신체비율을 보여준다. 2016년 MVP 시상식에서 신재영과 함께. 손과 발도 매우 큰 편인데, 신발 사이즈가 무려 320mm이라고 한답니다.
두산 베어스에서 영입하기 전에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도 영입을 고려했었고 다른 한 선수와 막판까지 저울질하다 니퍼트의 뇌진탕 부상 전력 때문에 포기하고 다른 선수를 영입했었는데 그 선수가 바로 브라이언 배니스터. 그러나 배니스터는 지진과 방사능 위험을 이유로 줄행랑을 치고 두산 베어스로 간 니퍼트는 한국프로야구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요미우리의 이 최악의 선택이 나비효과를 불러온 셈이다. 또한 기아 타이거즈도 트레비스 블랙클리와 니퍼트 사이에서 저울질 하다 왼손 투수인 트레비스를 선택했답니다.
가장 까다로운 타자는 주요 단신과 최단신[16] 선수라고 한다. 신장에서 나오는 스트라이크 존 때문에 대결하기 어렵고 빠른 발 때문에 출루시키기도 부담스럽다고 했답니다.
특이하게도 루크 스캇에게 매우 약하다. 메이저리그 시절 통산 5회 붙어 5번 모두 안타를 내줬을 정도로 약한데, 스캇이 KBO 리그를 뛰었던 2014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3월 23일 SK 와이번스와의 시범경기에서 첫 타석부터 홈런을 맞더니, 4월 9일 잠실 SK전에서는 멀티 홈런을 허용하며 패전투수가 된 바 있다. 김성근의 돌직구에서 "삼성을 이기기 위해 필요한 전략은?"이라는 질문에 김성근은 "니퍼트 데려와야죠"라고 답하였답니다.
반면 넥센 히어로즈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 본인도 이를 의식하는 듯 관련 인터뷰를 여러 차례 했다.
취미가 사냥과 낚시라고 한다. 그것도 총기가 아닌 활로 사냥한다. 이런 동영상도 공개되어 있으니 그냥 단순한 취미로 여기지는 않는 듯 하답니다.
일란성 쌍둥이 동생이 있다. 역시 야구 선수였으나 수술을 5차례나 받고 결국 은퇴하고 농장을 경영한다고 한답니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안다고 한다. 덕분에 유네스키 마야가 두산에서 뛸 당시엔 통역을 보조하기도 했다. 애초에 스페인어 자체도 미국에서 영어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언어이고, 미-멕 국경이나 플로리다 같은 경우는 아예 제1언어 자리까지 넘보기도 할 지경이다. 이와는 별개로 미국에는 라틴 문화권에서 온 이민자들이 매우 많아서, 스페인어가 모국어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으며, 학교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경우도 많답니다.
8년 가까이 한국생활을 하다 보니, 간단한 한국말 정도는 알아듣는 수준이다. 2016 스프링캠프에서는 장난으로 야유하는 민병헌에게 정확한 한국말로 꺼져를 시전, 유희관에게는 내가 할아버지라고 주장하기도 한답니다.
전 부인인 캐리 니퍼트와의 사이에서 딸 1명, 아들 1명을 두고있었다. 그러나 2014년에 이혼을 했고, 2015년 한국인 여성과 재혼하였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혼혈인 형제가 출연했는데, 현 한국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로 추정된다. 이거 덕에 한 때 귀화설이 나오기도 했다. 니퍼트의 귀화 가능성이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게, 2016 시즌에도 KBO에서 뛰면서 대한민국 국적법에 의해 니퍼트는 정식귀화가 가능한 5년 이상 거주기간의 요건을 이미 채우게 되었다. 귀화시험이라는 걸림돌이 있긴 하지만 일단은 정식귀화의 첫 조건은 충족한 셈이다. 하지만 니퍼트가 2018 시즌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은퇴한 상태라 의미없는 가정이 됐답니다.
여러 인터뷰가 호평을 받는 변이다. "다승을 거두기 위해 내가 특별히 하는 것은 없고, 동료들이 잘해주고 있기 때문에 나는 수혜자로써 승을 얻고 있다" "이곳에서 6년을 뛰었고, 단 하루도 후회한 적 없을 정도로 좋다"라고 전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투수에서 프런트의 해외 선수 스카우터로 전향한 라이언 사도스키와 함께 "용병"을 팀의 일부인 "외국인 선수"로 바꾸는 데에 크게 일조한 바 있다. 위에도 숱하게 언급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대단히 모범적인 팀 플레이어다. 수비 이닝이 끝날 때마다 야수들을 기다렸다가 격려를 해 주고, 거의 항상 마지막으로 덕아웃이나 불펜에 들어간다. 국내 투수들도 이러는 경우를 찾기가 극히 드물다는 걸 감안하면, 외국인 투수인 니퍼트가 이런 행동을 하는게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답니다.
위의 영결, 귀화 관련하여, 두산팬들 사이에서는 아예 외국인 선수가 다년간 KBO 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할 경우 외국인 쿼터에서 빼주는 '니퍼트법'을 정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니퍼트가 한국인 여성과 재혼하면서 귀화설이 터지면서 이런 논란에 불이 붙었다. 물론 다른 팀간의 형평성 문제, 해당 선수의 처우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고, 무엇보다 이전에는 이런 사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여진다. 더구나 두산을 떠난 2018년도 들어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구단이 없어졌기에 더더욱이랍니다.
2018년 10월 13일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 경기 시작에 앞서 전 동료 김재환의 시상식에 참여하여 훈훈한 장면을 또 한 번 연출했답니다.
2018년 kt 위즈에서도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방침하면서 사실상 7년간의 KBO리그와 작별할 확률이 높아졌고 결국 다른 팀과도 계약하지 못 하면서 KBO리그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답니다
대만의 야구사이트 'CPBL스태츠'의 공식 트위터는 2018년 12월 23일 대만 미디어에 따르면 37세인 니퍼트가 월 5만달러에 CPBL팀 푸방 가디언즈와 계약할 뜻이 있다. 현재 푸방 가디언즈는 관심을 갖고 있지만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다라고 전했다. 일단 계약 가능성을 점쳐보고 있다고 했는데 #, 금액 문제 때문인지 니퍼트와의 계약은 없었고 대신 헨리 소사와 계약했답니다.
2019년 4월 말 OSEN 기사를 통해 근황이 나왔는데, 소속사에 따르면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농장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완전히 은퇴한 건 아니지만 현역 연장보다는 사업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라고 한다. 7월 17일에는 자기가 몸을 담았던 두산과 kt의 경기를 가족들과 함께 관람왔다. 두산측은 이미 알고 있었으며, 최근 외국인 교체설이 나오던 상태라서 두산은 직접적으로 니퍼트는 그냥 관람을 온 것이라고 언급한다. 이후 이영미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경기도 인근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유소년 아카데미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답니다.
2020년 9월 8일, tvN 예능 프로그램 캐시백에 스포츠 레전드들의 팀으로 출연했다. 괴물 같은 운동신경을 자랑하며 팀이 확보한 돈 1600만 원 중 1205만 원을 혼자 벌면서 팀을 하드캐리했다. 아쉽게도 다른 팀원들의 부진으로 근소한 차이로 우승엔 실패했답니다.
2020년 11월 4일, 준플레이오프 1차전 두산과 LG의 경기에서 시구를 맡게 되었다. 영상 현역 마지막 경기였던 2018년 10월 13일 두산전 이후 약 2년 만에 잠실 그라운드에 모습을 비췄고, 두산 홈 팬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시구 이후 두산 화이팅이라 외치며 응원하고 마운드를 떠났답니다.
니퍼트는 인터뷰에서 본인이 은퇴 후 야구 아카데미를 운영하여 학생들을 상대로 야구인재를 육성할 거라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에서 운영을 시작했으나 하필 코로나가 덮친 시기라 그리 잘 풀리진 않았답니다.
KT WIZ 역대 외인 WAR 2위라는 성적과는 별개로 KT팬들은 마지막에 정이 뚝 떨어졌다는 평가가 있다. 18년 두산과의 마지막 경기 후 탈꼴찌를 확정하고 팬들에게 인사하는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KT선수들을 무시하고 두산 선수들에게 가서 일일이 인사를 한 것. 오재원이 KT쪽으로 가라고 손짓을 했는데도 무시하고 친목질을 해댔답니니다.
2021년 3월 11일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182화에 출연했고, 후반에 유희관과 홍성흔이 등장했다. 이때 유희관과 홍성흔이 최고의 파트너가 누구였는지를 묻자 별 고민 없이 양의지를 꼽았다. 그 후 양의지와도 영상통화를 하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방송에서는 제임스 후퍼의 주도 하에 쓰리픽스 챌린지에 일원으로 참여했으며 성공을 거두었다. 특이사항으로 이 프로에 출연하는 외국인들은 자막에 성씨가 아닌 이름을 쓰는데 니퍼트는 KBO 등록명 니퍼트로 워낙에 유명했던지라 이름인 더스틴이 아닌 성씨인 니퍼트로 자막이 쓰였답니다.
2021년 4월 26일 프로동네야구 PDB 주최로 열린 박명환과의 매치업에 선발 등판했다. 사회인 야구 선수들과 같이 경기를 했다. 4이닝동안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적절하게 느린 변화구도 섞어주었고 이 공을 친 사회인 야구 선수들도 간혹 있었다. 이 때 사회인 야구 특유의 수비로 인해 주자를 내보내긴 했지만 그때마다 삼진으로 틀어막아서 결국 무실점을 완성해버렸답니다.
2022년 8월 23일 언론의 취재에 따르면 나혜미가 결혼 6년 만에 임신해 몸조리에 집중하고 있다.
나혜미와 에릭은 지난해 2017년 1월 서울 모처에서 결혼식을 올린 바 있다. 특히 에릭은 신화 멤버 중 처음으로 결혼에 골인하는 멤버로 이목을 끌었다.
두 사람은 2017년 2월 첫 열애설이 보도된 지 3년 만에 이를 인정했으며, 연애 5년만인 같은 해 4월 결혼 소식을 알렸다.
당시 에릭은 "19년 동안 신화의 멤버로 활동하면서 신화창조 팬 여러분들 덕분에 많은 사랑을 받았고 앞으로는 더욱 안정된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하면서 여러분의 사랑에 보답할 것"이라며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나혜미는 2001년 영화 '수취인불명'으로 데뷔, 지난 2020년 KBS1 '누가 뭐래도' 이후 별다른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답니다.
- 나혜미 프로필
출생 나이 1991년 2월 24일 고향 출생지 경기도 이천시
신체 키 혈액형 170cm, AB형 가족 부모님 배우자 에릭(2017년 7월 1일 결혼 - 현재) 자녀(2023년 출산 예정)
학력 화수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 / 학사)
종교 개신교 소속사 토리엔터테인먼트
데뷔 2001년 영화 '수취인불명'
- 나혜미의 과거와 현재
초등학교 4학년 때 김기덕 감독의 영화 《수취인불명》에 아역으로 데뷔했다.
그 이전엔 KBS2TV 어린이 드라마 요정 컴미 제51회 방송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다.
2003년 7월 초등학교 6학년 때 SBS의 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 연습생의 생활을 보여주는 장면에 신세경과 함께 출연했답니다.
2007년 4월 26일부터 2007년 7월 13일까지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나혜미 역을 맡아 주목을 받았답니다.
2013년 11월 4일부터 2014년 6월 6일까지 KBS 1TV 저녁 일일드라마 사랑은 노래를 타고에서 정혜영 역을 맡았다.
2018년 9월 13일, KBS 2TV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 시즌3 554회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2018년 9월 15일부터 2019년 3월 17일까지 KBS 2TV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에서 김미란 역을 맡았다. 그 전엔 영화 치즈인더트랩에서 여자 주인공의 대학 선배인 이다영 역으로 출연했다.
2019년 3월 7일, KBS 2TV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 시즌4 22회에 게스트로 출연했답니다.
- 에릭 프로필 경력 이력
본명은 문정혁 (文晸赫, Moon Jung Hyuk) 출생 1979년 2월 16일 (43세)
고향 출생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본관 남평 문씨 신체 180cm, 70kg, B형
가족관계 부모님, 누나 2명 배우자 나혜미(2017년 7월 1일 결혼 - 현재) 자녀(2023년 출산 예정)
학력 서울대치초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연극영상학부 / 학사)
종교 개신교 병역 공익근무요원 소집해제 (現 사회복무요원 마크 사회복무요원 소집해제) (2008년 10월 9일 ~ 2010년 10월 30일)
소속사 신화컴퍼니, 티오피미디어 소속 그룹 신화
포지션 리더, 메인래퍼 데뷔 1998년 신화 정규 1집 해결사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배우. 6인조 보이그룹 신화의 멤버이며, '리더'와 '메인래퍼'를 맡고 있답니다.
본명은 문정혁, 영어 이름은 Eric MUN. 1979년 2월 16일 서울특별시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당시 미국에서 에릭과 알고 지냈던 토니 안과 앤디의 증언에 따르면 학창시절 에릭은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는, 그야말로 그 일대에서 엄청나게 잘나가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에릭은 당시 댄스팀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곳에서 공연을 하곤 했는데 한인 라디오방송 관계자의 추천으로 이수만을 만나게 되었다. 이후 단둘이 노래방에서 오디션을 보아 합격했는데, 이때 이미 UCLA 건축학부에 합격한 상태였지만 가수의 꿈을 위해 포기하고 서울로 건너와 연습생 활동을 시작했답니다.
1998년 신화의 멤버로 연예계에 데뷔하였으며, 신화의 멤버로서 13장의 정규 앨범과 7장의 비정규 앨범을 발매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신화 문서를 참고.
신화의 리더인 동시에 같은 그룹의 멤버인 이민우와 함께 신화컴퍼니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비즈니스를 위한 미팅은 이민우가, 최종적으로 서류에 사인하는 일은 에릭이 맡는다고 한다. 또한 신화의 정규 10집을 기점으로 이민우와 함께 신화 앨범의 프로듀싱과 디렉팅을 전담하고 있답니다.
배우로 활동할 때는 본명으로 활동했으나, 최근 드라마인 <또 오해영>에서는 '문정혁' 대신 '에릭'으로 나왔다. 이에 대해 에릭은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는 감독님이 본명을 사용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으나, 어차피 대중들은 나를 신화의 에릭으로 볼 것이고 신화의 에릭이라는 사실은 내 프라이드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또한 에릭만의 강점이라면 대한민국 아이돌 중에서 '그룹 활동과 배우 활동을 병행한 아이돌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꼽히는데 '연기 최우수상을 받은 최초의 현역 아이돌이다. 당연히 현역 아이돌 중에서도 배우로써의 수상 커리어가 좋으며, 꾸준히 지상파 미니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만 맡을 만큼 연기 쪽 입지가 단단하다. 배우로서의 대표작으로는 <불새>, <신입사원>, <또 오해영> 등등 있다.
다만 전업 배우들과 비교했을 때 작품을 많이 찍을 수 없다는 게 단점이다. 신화는 늘 2년 미만의 공백기를 가지는 그룹인데다[18] 활동 기획과 앨범 제작을 모두 멤버들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 또한 에릭은 드라마 인터뷰에서도 꾸준히 신화 활동이 배우 활동보다 우선임을 밝혀왔고, 자신은 신화 활동에 아주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 것 같으면 아예 시나리오조차 읽어 보지 않는다고 자주 언급한 바 있다.
드라마 <불새>를 통해 한때 일약 톱스타덤에 올랐던 인물로 신화 멤버들 중 가장 몸값이 셌다. 에릭이 <불새>를 찍었던 2004년은 신화가 톱 보이그룹이었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에릭이 그해 낸 세금이 한 멤버가 벌어들인 수입보다 많았다고 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때문에 에릭은 CF로 받은 수입을 멤버들에게 보너스라며 쿨하게 나눠주기도 했다. 개인광고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세간의 화제였던 메가패스 CF#이며 남자 아이돌 최초 자동차 CF모델이기도 하답니다.
- 포지션
- 리더 신화팬이면서 리더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팬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우리는 리더가 에릭이다라는 문구를 슬로건 중 하나로 밀고 있답니다.
SM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만료될 무렵 에릭은 신화라는 그룹을 존속시키기 위해 리더로서 직접 법 공부를 하고 변호사를 만나러 이리저리 발로 뛰어다녔다. 그리고 그렇게 SM을 이적한 후 에릭은 드라마 <불새> 이후 한참 주가를 올리던 시절, 한 소속사로부터 수십 억원의 파격적인 몸값을 제안받았음에도 멤버들과 계속 같은 소속사에 남아있기 위해 멤버들에게 상의조차 하지 않고 단칼에 거절했다. 당시 에릭은 두 달 만에 CF 수익만 수십 억이 들어오고 에릭이 일 년에 내는 세금이 멤버 한 명의 수입과 맞먹었을 정도로 몸값이 쎘다. 이때 에릭은 멤버들을 갑작스럽게 불러 용돈이라며 CF 수익을 나누어주기도 했고 단독 CF였던 코카콜라 CF를 그룹 CF로 돌려서 찍었답니다.
김승우의 승승장구에서 MC가 20대의 어린 나이에 이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묻자 에릭은, "아이돌 그룹 중 최초로 '따로 또 같이' 활동을 시도했고, 당시 각자 나름대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었다. 그런데 초심으로 돌아가 생각하면, 우리는 배우를 하러 혹은 솔로 가수를 하러 모인 게 아니지 않느냐. 우리는 신화를 하러 뭉친 것이고 신화이기 때문에 팬들이 우리를 응원해 준 것인데, 개인 활동이 더 벌이가 좋다고 해서 그룹을 놓는 것은 비굴하고 치사하게 느껴졌다."라고 답했다.
또한 <불새> PD 오경훈이 시간이 훌쩍 흐른 후 증언하길 그 당시 자신이 에릭에게 '언제까지 아이돌 할 수 있겠느냐, 이제 아이돌 그만 두고 배우나 해라'라고 말했으나, 에릭이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 신화 할 거니까 두고 봐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실제로 에릭은 배우로 주가를 올리던 때에도, 아이돌 꼬리표를 떼고 싶어했던 다른 아이돌 출신 배우들과 달리, 항상 자신을 신화의 에릭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답니다
또한 2005년 조현우 기자가 신화와 아이돌 문화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자, 에릭은 이에 대한 반박문을 올리며 신화로서 그리고 아이돌로서의 소신을 보여주었다. 훗날 에릭의 이 반박문은 <신화를 비판하려면 자격을 갖춰라>라는 제목으로 EBS 논술 교재 지문에도 출제되었답니다.
2005년 SM엔터테인먼트가 신화의 뒤통수를 때리고 2006년 신화 상표권을 오픈 월드에 대여해 주면서, 에릭을 포함한 신화 멤버들은 오픈월드의 갖은 횡포에 휘둘렸다. 당시는 아이돌의 전망도 좋지 않고 미래가 불투명했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신화는 멤버 전원이 개인활동으로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오픈월드의 온갖 횡포를 다 이겨내고 끊임없는 법정 공방을 해가며 '신화'라는 그룹을 지켜냈다. 그 중에서도 에릭은 앞장서서 오픈월드와 협상을 하고 법정 공방을 벌이며 신화 상표권을 되찾아오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인물이랍니다.
2000년대 후반경 군복무로 인한 공백기가 신화에게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이었는데, 공백기와 함께 여러 악재들이 겹치고 멤버들 간의 소통이 부족해진 시기에, 멤버들을 끊임없이 닦달하며 계속 한자리에 모이게 했던 사람이 바로 리더인 에릭이다. 이때 에릭은 멤버 6명이 한자리에 모이기 힘들어지자 멤버들에게 계속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며 "내 20대를 전부 바친 신화야, 진짜 이러기냐"라는 말을 했다고. 멤버들은 이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지 방송에서 자주 언급했다.
2011년 신화 멤버들이 다 함께 지분을 투자해 신화컴퍼니를 설립한 이후 현재 에릭은 신화의 멤버이자, 신화컴퍼니 대표이자, 신화의 프로듀서이자, 배우라는 4가지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이민우와 공동 대표로 있으며 서류처리나 재정관리는 에릭이, 비즈니스 상의 미팅은 이민우가 담당하고 있다. 본인 말로는 이미 잘된 적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영광에는 관심 없다고 한다.
배우로서 커리어에 해가 될 수 있는데도 늘 드라마 인터뷰에서 신화 활동이 먼저이고 신화 활동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 것 같으면 시나리오를 아예 읽어 보지조차 않는다고 대놓고 못 박는다. 이는 신화의 음반 제작 과정이 긴 관계로 정규 앨범 발매 1년 전부터 활동 플랜을 전부 짜놓기 때문. 다만 <연애의 발견>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때는 에릭이 멤버들에게 '~한 시나리오가 들어왔다'라고 말을 꺼내자 멤버들이 오히려 무조건 하라며 계속 등을 떠밀었고 신화 활동을 예정보다 뒤로 밀었다고 한다. 에릭은 "누구보다 신화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람이 바로 자신인데, 자기 때문에 신화 활동을 미루자는 말은 절대로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블락비의 박경도 뇌섹시대 문제적 남자에서 좋은 리더로 에릭을 꼽았는데, 에릭이 여전히 콘서트가 끝나면 멤버들 한 명 한 명에게 조언도 해주고 멤버들에게 사랑한다는 메세지도 자주 보낸다는 걸 들었다고 한다. 신혜성 역시 그가 솔로 앨범을 준비할 때 에릭이 빨리 보여 달라고 하더니 장문의 문자로 디테일하게 조언해 줬다며 '그 녀석 참 리더답다'라고 말했다.
안무가 최영준은 에릭이 리더로서 포스가 있다고 말했다. 에릭은 다른 멤버들이 서로 의견을 나눌 때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마지막까지 상황 정리가 안될 때만 나서서 정말 안 풀리는 것들을 해결해 버린다고 한다. 에릭이 그렇게 상황을 정리해 주면 신기하게도 멤버들도 그 말을 따른다고 한다. # 이런 에릭의 리더십은 신화의 단체 예능에서도 볼 수 있는데, 멤버들끼리 의견 충돌이 거셀 때에도 절대 목소리를 높이거나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고 다정하게 상황을 중재하는 에릭을 볼 수 있답니다.
- 메인래퍼
지금은 배우 이미지가 강해 과소평가를 받고 있지만, 일찍이 조PD, JOOSUC 같은 힙합계 거물들로부터 랩 실력을 인정받은 아이돌 래퍼이다. 지금은 아이돌 랩퍼들의 평균 실력도 좋은 편이고 언더 출신 아이돌 랩퍼들도 늘어서 실력 있는 아이돌 래퍼가 많이 나왔지만 1세대 시절 랩으로 인정받은 아이돌 래퍼는 에릭이 유일했다. 90년대 후반까진 한국에서 힙합 음악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는데, 미국에서 자란 에릭은 일찍이 힙합 음악에 꽂히고 래퍼의 꿈을 키워나갔답니다.
타고난 랩보이스가 매력적이고 섹시하다는 평을 받는다. 에릭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 랩보이스 만큼은 인정한다. 라임과 플로우가 좋고, 그루브나 랩핑 실력은 보통 아이돌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단순한 영어 랩핑의 실력이라면 국내 Top MC들과 견주어 전혀 밀리지 않는다.
신화 1집부터 13집까지 신화 앨범에 수록된 곡 대다수의 랩메이킹을 해왔다. 한때는 영어랩이 트랜드이고 에릭이 교포 출신이다보니 영어 위주로 가사를 썼는데 최근에는 트렌드가 바뀌면서 에릭도 그에 맞춰 한국어 위주의 가사를 쓰고 있다고 한다. 20대 때는 영어와 슬랭으로 써진 패기 넘치는 가사들이 많았는데, 30대부터는 로맨틱하고 섹슈얼한 가사들을 많이 쓰고 있다. 덕분에 에릭의 가사는 여성들에게 반응이 좋다. 신화 10집부터는 이민우와 함께 신화 앨범의 프로듀싱과 디렉팅도 전담하고 있다. 디렉팅을 할 때는 정말 단호하게 몰아붙이는 스타일이라고 한답니다.
자작곡으로는 신화 7집의 <Liar>나 <나의 전부 part 2>, 신화 9집의 <We can get it on> 등이 좋은 평을 받고 있다. 그 외의 곡으로는 6월의 일기 OST Is this The End?, 이현도 <New Classik> 수록곡인 City Of Mine feat. 이민우 & Ak'sent를 권한다.
과거 콘서트 중 불렀지만 소속사였던 SM을 디스하는 내용으로 인해 콘서트 후 발매된 라이브 앨범에 수록되지 못한 Make $(Money) 라는 곡도 있다. 이민우가 프로듀싱을 하고 랩메이킹은 에릭이 했다. 하루 만에 만든 곡에 레코딩도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 퀄리티는 상당한 편이랍니다.
본인도 음악 욕심이 많고 특히 힙합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그래서 힙합 솔로 앨범이 나온다 나온다 말이 계속 나왔는데 그 말이 처음 나온 지가 벌써 8년은 더 되었다. 본인 말로는 20년째 신화 앨범에 수록된 랩의 대부분을 써왔기 때문에 가사가 겹칠까봐 내지 않는다고 한다. 여담으로 신화의 곡들을 들어보면 에릭에 비해 실력이 부족한 전진과 앤디의 랩파트에 에릭이 더블링이나 추임새를 넣는 경우가 많다.
- 랩 피처링
2004년 유명 래퍼들과 함께 DEUX의 D.O.(이현도)의 <힙합구조대>에 피쳐링하면서 힙합 리스너들에게 그의 실력을 알렸다.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랩 피처링에 꾸준히 참여했다. 주석 4집의 <Most Wanted>, 허인창 미니 1집의 <Show>, 이현도 뉴클래식의 <힙합구조대>, City of Mine, MC Rink 1집의 <세(世)>, 혜령 2집의 <Jukebox>, DJ 처리 크로스오버 앨범의 <빛좋은 개살구> 등이 대표적. 그 외에도 본인을 제외한 신화 멤버 전원(신혜성, 전진, 이민우, 앤디, 김동완), 손담비, 점퍼, 간미연, S, 린, 이수영, SMAP의 앨범에 랩 피쳐링으로 참여했다. 피처링한 곡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아서 오래된 곡은 구할 수도 없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데 H.O.T.의 불멸의 히트곡 중 하나인 4집 타이틀곡 <아이야>의 영어랩 부분은 에릭이 작사한 것이며 심지어 피쳐링까지 했다.[24] H.O.T. 내에도 이미 랩퍼가 토니, 장우혁, 이재원 3명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에릭에게 피쳐링을 맡긴 것은 아마 H.O.T.의 영어랩 담당이 토니 한 명뿐이기도 했고, 에릭의 영어랩 실력도 워낙 출중하기에 마침 당시 같은 소속사 신인인 에릭을 띄워 주고자 내린 결단인 듯하다.
또한 2012년 9월 H유진의 곡 <we rock>에 랩 피처링을 했는데 피처링 부분의 가사가 매우 의미심장하다. '14년 동안 지켜냈어 누가 승자겠어'.
덧붙여 2012년 11월 가인의 디지털 싱글 <노스텔지아>'의 피처링에 참여했다. 원곡은 2008년 에릭과 요조가 같이 불렀던 동명의 곡으로, 편곡은 원곡과 큰 차이가 없으나 에릭의 랩 가사가 아예 바뀌었다. 원곡의 경우 랩 가사 대부분이 영어였지만 새로 부르면서 전부 한국어로 바꿨고 내용도 완전히 다르다. 원곡도 가인 버전도 명곡이니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들어볼 것을 추천한답니다.
- 특징
- 외모 '역대 잘생긴 남자 아이돌'을 말하면 항상 언급될 정도로 잘생겼으며, 연기 활동을 할 때에도 배우들에게 밀리기는 커녕 웬만한 배우들을 다 압도하는 비주얼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 남자답고 카리스마 있는 외모 덕분에 남자들도 인정하는 미남.] 순수 한국인 혈통임에도 불구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편이라 아랍 계열 및 라틴&남미 계열 등 더운 남방계 느낌이 많이 풍기는 이국적인 외모가 특징이랍니다.
서구적인 체형의 소유자로 키가 크고 다리도 길고 특히 어깨가 떡 벌어졌다. 타고난 체격이 좋은 데다 몸매 관리도 잘 한다. 다만 데뷔 초에는 너무 말라서 넓은 어깨가 부각되지 못했다. 데뷔 초 에릭은 왜소한 스나입스라는 별명이 있었을 정도로 말랐었다.
그룹 활동 초기에는 당시 아이돌판에서 유행하던 미소년계 외모가 아닌데다, 개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기에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았으나, 그때에도 워낙 잘생긴 외모로 연예관계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2004년 <불새>를 기점으로 에릭은 본격적으로 톱스타 반열에 오르고 대중적인 히트를 치며 당대 '미남 아이돌', '미남 배우'의 상징으로 떠올랐답니다.
아이돌인 만큼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해 본 스타 중 하나. 이국적이고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이마나 두상이 예뻐 무슨 헤어를 해도 잘 어울리지만, 가끔은 너무 과감한 스타일을 해서 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또한 신화 팬들은 수염, 근육, 태닝을 끔찍하게 싫어하며 금기 취급하는데 에릭만큼은 이 세 가지 금기에서 예외이다. 아이돌임에도 수염과 근육이 잘 어울리고 원래 피부가 까무잡하기 때문. 오히려 잘 다듬은 수염은 작품 활동시 캐릭터를 더 잘 살려주기도 한다. 실제로 <불새>가 히트를 쳤을 때 남자들 사이에서 에릭 수염이 유행했답니다.
2021년 7월 23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날이 덥길래. 30대부터 2주마다 해온 새치염색으로부터 두피를 해방시켜주기로 했다.”며 머리를 짧게 깎은 반백발 모습을 공개했답니다.
- 성격
기본적으로 과묵하고 자상하고 느긋한 성격. 낯을 굉장히 많이 가리고 친해지기 어려운 성격이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다정하고 짓궂은 성격이다. 신화 멤버들과 있을 때와 아닐 때의 차이가 가장 큰 멤버.
낯가림이 매우 심하다. 올해 데뷔 20년차임에도 '예능 울렁증'이 있어서 신화 멤버 없이는 절대 예능에 나가지 않았다. 삼시세끼 어촌편3 역시 처음에는 출연을 거절했으나, 팀을 위해 나가달라는 이민우의 권유로 신화 13집 활동에 도움을 보태기 위해 출연하였답니다.
멤버들과 있을 때는 그 신화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똘기 넘치는 비글로 꼽힌다. 에릭의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순간은 신화 멤버들과 있을 때로, 거의 사람이 180도 달라진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신화 내에서 가장 장난기가 많고 가장 스킨십을 좋아하는 멤버이며, 신화의 전설적인 일화들 중 상당수는 에릭의 미친 장난기에 의해 탄생하였다. 4차원 아이돌의 원조격 되는 인물. 애초에 '4차원'이라는 단어며 기믹 자체가 에릭의 캐릭터로부터 나왔답니다.
리더로서 위압적이지 않으면서도 포스가 있다. 김동완은 자신의 포토에세이에서 '에릭은 대범하고 대담하다'라고 말하며 '신화에서 가장 남자다운 멤버'로 꼽았다. 또 '멤버들과 신화컴퍼니 직원들에 대해 정말 많은 이해심을 가지고 있다'고. 신화 안무팀의 최영준 안무가는 에릭은 리더로서 포스가 있다며, 평소에는 멤버들의 의견을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끝까지 중재가 안 되는 상황일 때만 나서서 정리를 한다고 했다.
평소 에릭은 내 편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데, 여기서 에릭이 말하는 '내 편'이란 가족들, 신화 멤버들, 신화창조 등을 일컫는 듯하다. 에릭은 신화가 군입대로 공백기를 갖기 직전인 2008년 신화 콘서트에서, '내 편이 참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내 편이네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 이후 에릭은 <또 오해영> 인터뷰에서도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묻자 "내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가족이나 멤버들 같은."이라고 답한 바 있다.
이처럼 자기 사람에게 매우 애착이 크고 헌신적이지만, 반대로 자기 사람이 아니면 마음을 다 열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또 오해영> 인터뷰에서는 '연예계 생활을 하며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 신화 멤버들 외에는 마음을 다 열지 못한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또 오해영> 포토 에세이에서도 "생각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많던데... 나는 비교적 웃음이 헤픈 편이다. 내 사람들이라 여겨지는 사람들 앞에서는."이라고 말했답니다.
- 열애설 및 결혼
공개 연애주의자였다.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서 숨기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고, 실제로 잘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편으로 라디오 스타에서 유세윤이 에릭이 여친과 당당하게 길거리에서 스킨십하는 걸 봤다고 증언. 다만 신화 10집으로 컴백하고 출연했던 김승우의 승승장구에서 더 이상 공개 연애는 안 하고 싶다고 말했답니다.
4집 때 라디오에서 여친이 있다고 말해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켰었다. 라디오 폭탄 발언 당시에는 평범하게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이미 앨범 땡스투 등으로 간접적으로 티를 냈고 공개 데이트도 하는 등 알 만한 사람들은 에릭이 여친이 있다고 발언하기 전부터 상대가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김희선과는 약 3년 정도 사귀고 결별했답니다.
그 후 박시연과 열애가 공개되었을 때, 김희선과는 달리 박시연과의 연애사가 공개되었다. 당시 비교적 무명이었던 박시연은 '에릭의 여자', '에릭의 여인' 등의 타이틀로 인지도를 얻었다. 박시연 문서 참고. 당시에는 아이돌의 공개 연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도 이례적으로 공개 연애를 해서 신비주의로 무장한 아이돌의 클리셰를 깨부수는데 큰 공로를 세운 인물이랍니다.
2014년에는 나혜미, 2016년에 서현진과의 열애설이 각각 보도됐지만 모두 부인했답니다.
하지만 곧 유부남이 될 예정이기에 앞으로는 연애의 공개 및 비공개 여부의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다. 2017년 4월 17일 신화의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올해 7월 결혼을 할 예정이라고 직접 밝혔다.공식입장 전문 상대는 이전부터 열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던 배우 나혜미. 결혼식은 서울 모처의 한 교회에서 가까운 지인들만 모시고 조용하게 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아마 양가 가족과 신화 멤버들, 그리고 신랑 신부의 친한 친구들 정도만 참석하는 소규모의 결혼식이 될듯하다. 이로써 신화 멤버들 중 가장 처음으로 유부남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축가도 신화 멤버들이 직접 부를 예정이라고 한답니다.
그 와중에 신화창조를 비롯한 팬들 사이에선 축가는 신화의 정규 6집 타이틀곡 너의 결혼식으로 하자는 드립이 퍼지는 중이다. 멤버의 결혼식에 그룹의 노래를 불러 주는 의미있는 축가라고 단순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너의 결혼식은 전형적인 가사가 시궁창인 노래, 그것도 동생의 결혼식에서 동생의 아내가 자신의 이상형임을 깨닫고 절망하는 내용이다. 이걸 에릭의 결혼식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형제 수준으로 가까운 신화 멤버들이 부른다면 무슨 꼴이 벌어질지는 상상에 맡긴답니다.
그리고 드디어 2017년 7월 1일부로 결혼식을 올리며 신화 멤버들 중 최초로 유부남이 되었다. 축가를 부를 것이라는 예측을 뒤엎고 멤버들 다섯 명이 모두 신랑 측 들러리로 섰답니다.
2019 미스 인터콘티넨탈 코리아 수도권 선발대회 2위 2019 미스코리아 경북 참가 2018 월드 미스 유니버시티 참가 특기: 연기, 한국무용
총 시그널: 11 마지막 시그널: 1(임한결)
- 하트시그널은 어떤 프로그램???
시그널하우스에 입주한 일반인 출연자들간의 러브라인을 연예인 및 전문가로 구성된 예측단이 추리하는 방식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채널A에서 2017년 6월 2일, 첫방송되었고, 본방송 시간은 매주 금요일 밤 11시 11분이다. 재방송은 매주 토요일 낮 1시 20분, 일요일 낮 1시 30분이랍니다.
채널A에서 도시어부와 함께 꽤 화제가 된 프로그램이다.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된 일본 예능 테라스 하우스의 형식을 차용하여 삶보다는 연애에 좀더 집중하게 하여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사실상 이후 환승연애 체인지 데이즈 돌싱글즈 등으로 이어진 연애 관찰 예능의 시초라고 볼수 있다
BGM으로 볼빨간사춘기, Alan Walker나 넬, 검정치마 등의 곡들도 나온답니다
- 시그널하우스
서울시 종로구 북악산로 147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에 소재해 있다.
- 시그널하우스의 규칙
1. 매일 저녁 시그널하우스로 귀가한다. 2. 입주 첫날에는 나이와 직업을 공개할 수 없다. 3. 매주 한 사람과 데이트 할 수 있다.
4. 합숙기간 동안 이성에게 직접적인 고백은 할 수 없다. 5. 매일 밤 단 한 명의 이성에게 문자를 보낼 수 있다. 단, 발신자는 표시되지 않는다. 6. 입주기간 동안 개인연락처를 공유할 수 없답니다.
-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
아무래도 예능 드라마용 프로그램이다 보니 비판점을 피할 수가 없겠지만 뉴스에 나오고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언급할 정도입니다.
일본의 후지TV와 넷플릭스가 제작한 <테라스 하우스>의 기본 컨셉과 비슷하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로 초반에 다이닝 테이블에서 와인잔을 부딪히며 인사를 나눌때의 편집점이나 화면 필터, 패널들이 VCR을 보다가 스튜디오로 넘어올 때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까지 <테라스 하우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의 <테라스 하우스> 컨셉 자체가 미국 MTV의 <라구나 비치: 더 리얼 오렌지 카운티>나 <더 힐즈>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채널A가 후지TV를 베꼈느냐의 논쟁은 무의미하다는 의견도 있답니다.
대본대로 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계속해서 있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대본은 일절 없었다. 9월 2일 스페셜 방송에서 장천이 직접 말하길 100% 리얼 상황이었다고. 6화에서 논란이 되었던 장천&배윤경의 만남조차 장천은 촬영팀과 종일 함께하던 날이었고 평소의 동선대로 귀가해서 동선까지 카메라가 보고있었다고 한다. 배윤경도 마침 귀가길을 카메라가 찍고있었으며 우연히 귀가시간이 겹쳐서 장천은 배윤경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발견하고 차에 내려서 배윤경을 부른 것이다. 유튜브에서 서주원 씨도 말하길, 대본은 없다고 하였답니다.
시청자들이 별로 신경쓰지 않는 부분이지만 8회에서도 이런 문제가 드러나는데 예고편에서 윤현찬이 서주원에 대해 자신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듯한 언급이 있었는데 본편에서는 그런 게 없었다. 그런데 이건 속칭 악마의 편집 문제지 출연진들의 진정성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그 상황 자체가 서주원이 일부러 윤현찬이 셰프인 것을 떠보려고 음식이 맛 없다는 식의 무례한 말을 던졌는데, 윤현찬이 받아치는 과정이었답니다.
이런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하나는 윤현찬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서 받아치면서 한 말 때문에 분위기가 안 좋아지자 편집하고 훈훈한 뒷 이야기로 넘어간 것, 다른 하나는 윤현찬도 괜히 떠보는 것을 파악하고 장난으로 받아쳤는데 그게 편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뒤에 서주원과 윤현찬이 훈훈하게 대화하는 모습과, 윤현찬이 웬만해서는 흔들리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을 본다면 후자의 가능성이 높다. 전자의 가능성도 있으나 그것이 굳이 대본이라기보다는 출연진 스스로 분란을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에 후에 수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뿐일 것입니다.
마지막회인 12회에서는 이런 상황들이 겹치고 겹쳐 논란이 극에 달하는데 서주원의 영암에 대한 질문에 배윤경이 부정하는 대사가 애매한데다가 서주원은 또 그걸 오해하고 마음에 담아두고 시그널하우스 퇴소후 원하는 장소에서 기다리랬는데 8명 중 6명이 밖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아직 초봄인 상태라 상당히 추웠는데도 말이랍니다.
그 증거로 장천이 배윤경과 커플이 성사되었을 때, 강성욱과 신아라가 커플이 성사되었을 때 자신의 셔츠를 건넨 것이다. 이런 것들 때문에 발연기라느니 이런 논란들이 우후죽순했다. 영암 사건은 그냥 우연이라고 했지만 8명이 원하는 장소는 제작진이 장소 지정을 했다고밖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성사된 커플은 서로 가까이 있었다. 물론 이건 장소 지정 안 했다가는 극단적으로 1명이 수서역, 1명이 구파발에서 전화를 했다고 치자. 상상만 해도 끔찍하답니다.
일부 출연진들이 촬영 기간 당시 현실 애인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 또한, 썸에는 관심 없고 그저 자기 홍보하러 나온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 하필 아래 언급된 스페셜 방송 덕분에 그 논란이 더욱 커졌습니다
병역 군대 육군 병장 만기전역 학력 경기고등학교 투명로고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원형 아이콘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 학사) 프린스턴 대학교 심플 아이콘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석사) 프린스턴 대학교 심플 아이콘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박사)
- 그의 직업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랍니다.
- 일생과 과거
1949년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에서 태어났다.태어나자마자 얼마 안 있어 6.25 전쟁으로 인해 가족이 임시수도인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전쟁이 끝난 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하였답니다.
경기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1968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했고 1972년 서울대학교 졸업식에서 상과대학 수석으로 졸업했다.당시 기사 수석 졸업하였기에 청와대에서 열리는 만찬에 초청받기도 하였고, 방송 출연도 했다. 그 후 동대학원에 진학하였으나 병역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고 유신체제로 인해 대학원 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현역병으로 군에 입대하였다. 육군에서 34개월간 군복무를 한 후 전역하였답니다.
그 후에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서 9개월 가량 근무하였다. 이 은행에서 현재 아내를 만나 결혼하였다. 그 후 1976년에 유학을 떠나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전공은 재정학(공공경제학)이다. 국내의 대표적인 미시경제학자라고 할 수 있답니다.
원래는 재정학 외에도 국제무역론, 경제발전론도 대학원 때 전공으로 선택했으나, 제일 애착이 가는 전공이 재정학이었고 박사학위 논문 작성부터 해서 주 연구분야는 언제나 재정학이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뉴욕 주립대학교(올버니 캠퍼스)에서 교수 생활을 하였다. 미국에서 교수 생활이 그리 즐겁진 않아서 1984년에 모교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옮겨가게 되었답니다.
- 주요 저작
2022년 현재 열린경제학, 경제학원론, 미시경제학, 재정학 등 교과서를 포함하여 총 22권의 책을 냈다.
경제학과 필수과목인 경제학원론, 미시경제학 교과서를 잘 써서 유명하다. 일반인들 대상으로 가장 유명한 한국인 경제학자를 묻는다면 김종인, 유승민, 정운찬, 장하성, 김상조 등 아무래도 정계에 몸 담은 인물들이 많이 거론되지만, 경제학 전공자 대상으로 묻는다면 거의 대다수가 이준구를 뽑는다.
- 교과서
- 미시경제학 + 수학노트
1989년 초판 발행. 7판까지 나왔으며, 초판 출간 이후 34년째인 교과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미시경제학 교과서. 최근에는 김영산+왕규호 공저, 임봉욱... 좋은 한국어 경제학 교과서 많지만, 여전히 판매 1위 베스트셀러랍니다.
미시경제학 전반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는 책. 미시경제학 초심자들도 차근차근 읽어내려가면 충분히 미시 전반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쓴 책이랍니다.
다른 미시경제학 교과서들은 수식 위주의 접근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나, 이 저서는 경제적 직관 및 논리력을 증진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초심자들이 접근하는데 용이하다. 다만, 의외로 건너뛰는 내용, 개념들이 많다. 한두 번 읽어서 이해하기는 어렵다. 수식은 많아도 단계별로 쉽게 설명하는 김영산 - 왕규호 미시경제학 교과서와는 다르다.
이준구 명예교수가 49년생, 70대라서, 문체, 번역어, 개념 설명이 2020년대 기준으로는 너무 옛날식이라 이해하기 어려우며 최신 이론도 부족하고, 내용에 빠진 게 있어서 재정학처럼 공저자로 젊은 현직 교수 영입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수식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 있다. 경제학적 직관을 기르는 용도로 학교에서 경제수학이나 다른 심화수업으로 보충하면 된다고 반박하지만, 다른 교재들 비해서 수식 너무 적다고 한다. 별도 판매하는 수학노트를 같이 공부해서 보충해도, 수식과 수리적 측면이 부족하므로 경제학 전공자들은 다른 교과서(김영산+왕규호, 임봉욱, Hal. Varian), 수험생들은 다른 참고서(임봉욱 미시경제학 연습) 따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있답니다.
다만 이준구 교수의 교과서는 미/거시경제학 수업을 한 학기에 이루어지고, 이후 타 경제학과 심화수업에서 보충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서울대 경제학부 미/거시경제이론 수업이 한 학기에 이루어지는데 다른 교과서들에서 언급되는 내용까지 상세히 다루기에는 한 학기 가지고는 어림도 없거니와 처음 전공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대부분 버겁다. 전공자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방식은 한 학기 수업에서 미시경제학을 뗀 뒤 미/거시경제학 책을 버리지 말고 심화전공에서의 미/거시 각론의 성격을 지닌 전공심화 수업으로 그 내용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다만, 서울대 경제학부처럼 전공심화 수업이 풍부한 곳은 그리 많지 않으므로 학교 사정에 따라 다른 교과서들을 보는 것이 더 이상적일 수도 있ㄷ바니다.
그리고 처음 공부하는 수험생 입장에서는 접근하기 좋은 교과서로 교과서를 한 바퀴 돌리고 심화수업에서는 강사 수험서나 자료에 단권화한 뒤 문제풀이를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며, 교과서는 그 과정에서 모르는 부분을 발췌독하는게 이득이지, 초시생이 다른 교과서들을 본다면 진이 빠져 오히려 수험이 더 길어진답니다.
그리고 수식의 경우, 이준구 교수의 교과서에서 말로 간단하게 적은 것이 사실은 복잡한 수식으로 표현해야하는 심오한 내용인 경우가 많으며[12], 이런 내용까지 한 학기 수업에서 다루기 힘들기에 의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들로 처음 책을 보는 입장에서는 쉬우나 다시 보면 어렵고 또 다시 보면 깨우치는게 많은 책이라고 한답니다.
- 경제학원론
1997년 초판 발행.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을 원론 수준에서 각각 배운다. 자신이 미시경제학자이다 보니 미시경제 파트는 본인이 주로 담당하고 거시경제 파트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주로 담당했다고 한다.
초판이 나왔을 땐 상당히 책 내용이 혼잡했던 것으로 보인다. 누구에게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원론 교과서를 만들자고 했는데 막상 만들고 보니 허점 투성이였다고. 3판이 나오고 나서야 어느정도 진정이 되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이창용 총재가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할 적엔, 미시경제학 파트는 이창용 총재가 강의하고 거시경제학 파트는 본인이 강의하였다. 각자 전공과 반대로 강의를 한 셈인데, 그 이유는 원론에서 미시경제 파트를 자신에게 배우고 나중에 2학년 올라가서 미시경제학 파트를 본인에게 또 배우면 자신에게 배웠던 내용을 또 배우는 거라 지겨울 것 같아서라고.
여담으로 이창용 총재가 거시 부분 원고를 써서 이준구 교수에게 보냈을 때, 문체와 전개방식 등이 많이 바뀌었는데, 이창용 총재는 할 말이 없었다고 한다.아마 처음에는 장황하고 간결함이 많이 없었는데, 이준구 명예교수가 원고를 읽고 자기 스타일대로 고쳐나간 듯 하답니다.
2004년 초판 발행. 위에서 언급된 경제학원론처럼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을 배우긴 하지만 원론보다는 깊이가 좀 얕다.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려는 게 아니라, 경제학이 어떤 학문인지 알고 싶은 사람이 보면 괜찮다. 경제학을 심화 학습하기 위한 예비단계용 보다는, 일반인 교양수준. 경제학원론 책에 비하자면, 고등학교 경제 과목보다는 살짝 심화된 수준이다. 예를 들어 경제학의 필수 개념인 무차별곡선이 경제학 들어가기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깊이가 얕기에 대학에서는 경제 관련 교양 강의에 교재로 채택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고, 일부 대학에서는 1학년 원론 과정에서 다룬다.
K-MOOC에 저자의 온라인 강의도 존재한다. 본인이 교재와 같이 공부하는 걸 강력히 추천하니 강의를 보려면 책과 같이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
삽화가 대학원생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한다. 경제학원론에서도 마찬가지랍니다.
- 재정학(조명환 공저)
본인의 전공과 가장 가까운 교과서. 한국어 공공경제학(재정학) 교과서가 별로 없어서, 이 바닥에선 이 책이 정석이었다. 최근에는 임봉욱 공공경제학, 나성린•전영섭•홍성훈•허은정 4인 공저 공공경제학, 이만우•주병기 재정학 교과서도 많이 본다. 외국 번역서는 좋은 게 없고, 원서는 대학원에서 본답니다.
원래 미시경제학처럼 이준구 교수 단독 저서였으나 이후 조명환 교수도 같이 합류하였다. 조명환 교수 합류 이후 주류 견해 반영이 늘었지만, 여전히 세계적 주류 공공경제학(재정학)과는 다른 이준구 교수만의 독자적 견해가 많아서, 다른 교과서도 같이 보는 것이 좋다.
당연하지만 미시경제학을 어느정도 숙지하고 나서 본 책을 공부하는 것이 좋답니다.
다만 미시경제학 교과서와 같이 보면 발생하는 사소한 문제가... 미시경제학에서 일부 내용은 본인의 재정학 책에서 자세히 설명하니 그걸 참고하라고 하고는, 재정학 책을 보면 그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본인의 미시경제학을 참고하라는 몇몇 내용이 있답니다.
미시경제학에도 없는 수식이 말로만 쓰이는 경우가 있어서 다른 우리나라 교과서와 혹은 대학원 재정학 원서 등으로 보충하는 것이 좋다. 재정학 각론 수업이 모두 갖춰진 학교도 많이 없거니와 그 수업들은 우리나라 교과서는 물론 원서도 드문 경우가 많답니다.
- 미국의 신자유주의 실험
미국 뉴딜 정책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던 평등화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미국 사회가 어떻게 불평등화의 길로 빠져들었는지에 관해 논하는 책이랍니다.
- 인간의 경제학
행태경제학에 관한 책. 전통적인 경제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각종 경제 현상에 대해 분석한다. 기본적으로 경제학 교과서는 인간을 매우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고 있는데 반하여 이 책에서는 인간을 제한된 합리성만 가진 불완전한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 대조점. 행동경제학이 어떤 학문인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 권장되는 책이다.
참고로 본인은 책의 표지가 별로 마음에 안 든다고 한다.
- (이준구 교수의) 열린경제학
경제학 전반에 대해 이것저것 간단명료하게 설명한 책. 본인 말로는 경제학을 전혀 모르더라도 이해할 수 있게 매우 쉽게 썼다고 자부한다. 경제 관련 용어/시사나 유명 경제학자 등을 설명하는 책.
그러나...가독성은 좋지 않다. 여백 적고, 책 전체에서 수식 2개만 나오고, 오로지 글...지루하고 산만하다.
그림, 수식이 있고, 여백이 넉넉한 경제학원론, 미시경제학이 훨씬 보기 편하다.
고등학생, 일반인에게도 경제학원론 추천한다.
- 논문
2015년 현재 논문은 총 33편을 저술했다.
발표한 학술지를 기준으로 분류할 경우, JOURNAL OF DEVELOPMENT ECONOMICS 1편, 경제논집 14편, 재정논집 2편, 자원환경경제연구 1편, 사회과학경제연구 1편, SJE 1편, 경제학연구 2편, KEJ 3편, 기타 8편이다.
이 가운데 2015년 기준으로 SSCI등재된 학술지에 발표한 것은 1편[24], KCI등재 학술지에 발표한 것은 2편이랍니다.
- 사상 및 견해
학문적 성향은 폴 크루그먼, 조지프 스티글리츠(기말고사 중 한 문제도 답이 조지프 스티글리츠였다)들과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수업 시간에 '본인은 미시경제학자이므로 거시경제학 분야에 속하는 케인지언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의 대학원 시절 케인즈경제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답니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대한 서평에서 옥의 티가 있다고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호평을 내렸답니다.
부의 재분배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불평등 사회를 달리고 있는 미국을 절대 닮아서는 안 된다고 자주 강조한답니다.
경제학원론의 중요성을 대단히 강조한다. 본인 말로는 경제학원론만 제대로 마스터해도 경제학을 대단히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덧붙여 前 서울시장 조순 명예교수도 '경제학원론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사회에서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평한 바 있답니다.
이준구 본인도 4학년 진입할 때까지 경제학원론을 마스터하지 못해서 방학 때 겨우 마스터했고, 프린스턴 대학교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경제학원론 정도만 가까스로 이해하고 있었고, 그나마도 4학년 때 samuelson 원론책을 읽으며 머리가 트인 것인데, 글씨가 작은데다가 그 당시에는 고스란히 빛이 눈에 반사되는 저질의 종이를 썼기 때문에 눈이 나빠져서 안경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저서에는 항상 종이를 좋은 걸 써달라고 부탁한다...본인이 쓴 경제학원론이 2판까지 난잡하다고 비판받은 것은 안 비밀.
2004년에 새만금 사업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답니다.
이명박 정권 이후 4대강 정비 사업 대해서도 의견을 내었다.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상당히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 더 나아가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수감된 날 "그는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으며,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정치를 '거짓의 정치'라고 본다", "우리 헌정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라고 혹평했답니다.
반값등록금에 대해서는 반대. 물론 등록금을 무조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건 아니고, 예일대 식의 장학정책으로 해결하고 정부의 재정지원은 학문 발전에 쏟는게 맞다는 입장이랍니다.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찬성의사를 표했답니다.
대학 내 영어강의 의무화를 반대한다. 참고로 서울대는 08학번부터 일정 학점 이상의 영어강의를 의무로 듣도록 학사제도가 개편되었다.
영어 강의에 상당히 비판적이긴 하지만 영어 교육까지 경시하진 않는다. 서울대를 나와서 무슨 일을 하건 영어는 고급 수준으로 필요하므로 영어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항상 강조하였고, 원론, 미시경제학, 재정학을 가르칠 때 항상 영어 원문 리딩 자료를 읽게 하였는데, 모두 유명한 경제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발췌한 것이다. 경제학원론을 공저한 이창용 교수와 함께 이코노미스트를 꼭 읽으라고 학생들에게 권유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답니다.
입시제도에 대해서는 영재선발이나 지역균형선발은 찬성하면서도, 그 외에 부분들은 최대한 단순화시키는 것이 맞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고교등급제에 대해서도 반대. 김수행 교수가 서울대를 은퇴하고 나서는 서울대 내에서 비판을 꽤 받는 편이며, '마르크스경제학자였던 김수행이 받던 걸 대신 뒤집어 쓰는것 같다'고 말한적이 있다.
정책적인 측면에서 유승민과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부자감세 반대, 증세를 통한 복지 강화, 국책사업의 무분별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반대 등 경제와 관련된 정책에 관해선 견해가 서로 일치되는 부분이 많다. 그 외에도 모병제 반대, 4대강 비판 등 잘 찾아보면 공통 분모를 은근히 많이 찾을 수 있다. 각자의 생애에서도 공통점이 많은데, 두 사람 모두 서울대학교 경제학부를 나왔고, 현역병으로 병장 만기전역을 하였으며, 미국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만 유승민 의원은 경제, 안보 등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해 지속적,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행보를 보여온 반면, 본인은 아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비판 글의 5문단에서 보듯 문재인 정부 지지자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방향은 옳지만, 너무 급진적이라고 비판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이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호들갑을 떤다고 비판하면서 현 경제 위기상황은 이명박근혜 정권 이래로 계속되어 온 위기지 결코 이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이 만들어낸 위기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 다만 소득주도성장 자체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비판적인 견지를 드러낸 바 있답니다.
문재인 정부의 24조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두고서도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비교되어도 할 말이 없다"고 지적했답니다.
2021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건의를 논하자 '진솔한 반성과 사과 없는 상황에서 사면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해당 글에서 이 교수는 "'국민통합'을 위해 두 전 대통령을 사면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는 건 인정한다"면서도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진솔한 반성과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답니다.
그러면서 "그런데 지금까지 나는 그 두 사람이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광경을 본 적이 전혀 없다"며 "진솔한 반성과 사과가 없는 상황에서 섣부르게 사면을 결정하면 국민통합은커녕 국민분열의 비극적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답니다.
주택시장 문제에서 진보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오세훈 후보가 당선되어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하자 집값이 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거론했다. 장기적이지 않은 단기간의 폭등은 투기만이 그 원인이라며 중과세 기조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답니다.
법인세율 인하 관련해서 윤석열 정부를 비판했다. 그러나 최고세율 22%는 미국, 영국, 독일...주요국보다 여전히 높다. 법인세 인하 경쟁 심해, 최저세율 15%조차도 세계 합의 안 되는 현실경제와는 동떨어진 비판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실책에 대해서는 완곡하게 지적한 것과는 대조적이랍니다.
- 여담들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했을 때 상당히 가난하게 지냈다고 한다. 연봉은 2만 2천 달러 가량이었는데 막상 집에서 지원하는게 없어지고 가족 부양하랴, 한국 유학생들 보면 밥 사주랴 해서 본인 말로는 굉장히 가난하게 생활하였다고 한답니다
고1 시절, 세계사 시험에서 "우파니샤드와 베다는 고대 인도의 ○○○ 철학서다."라는 시험 문제 때문에 반에서 폭동이 일어날 뻔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예를 들면서 자신은 암기위주 교육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한국 최고 고등학교라는 60년대 경기고 수준이 이랬습니다.
시사 이슈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이야기할 때 '저는' 대신에 '나는 ~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말투가 특징적이랍니다.
원래는 학부 때 조순 교수의 영향을 받아 프린스턴에 왔을때는 화폐금융론 등 거시분야를 전공하고 싶어했으나 먼저 프린스턴에 온 정운찬 교수와 이야기해본 결과 똑같은거 전공하면 국익낭비라고 내가 먼저 찜했다 저리가 워이 미시분야로 바꿨는데 Musgrave 재정학 책을 읽은 뒤 재정학에 흥미가 생겨 재정학을 주 전공으로 삼았다고 한답니다.
역시 서울대를 대표하는 경제학자인 정운찬 교수(전 국무총리)와는 경기고등학교-서울대학교 선후배 사이다. 물론 학문적, 정치적 견해는 다른 부분도 많지만(예를 들면 4대강 사업. 애초에 정운찬이 총리를 지낸 정부가 이명박 정부니만큼...) 사적으로는 상당히 친하다고 한다. 가끔 정운찬 교수가 짬으로 눌러버리기도 했답니다.
여담으로 서울대 경제학부에 진학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준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정운찬 교수이다. 당시 법대랑 경제학부 중 고민하던 이준구 교수에게 경제학 박사되면 장관도 되고 청와대 수석도 될수있다는 등등 꼬셨다고...(물론 진짜 경제학부 선택한데는 다른 이유도 많았지만) 나중에 수업시간에 이 이야기를 하면서 정운찬 교수가 어린 고등학생을 꼬드겨놓고, 정작 자신은 장관은 커녕 학장도 못 되었다면서 푸념하는 디*를 했는데 하필 수강생이 정운찬 교수에게 일러바쳐 불려갔다고... 소생 만족하고 있습니다로 넘겼다고 한다 후덜덜. 뭐 그만큼 친하다는 이야기. 또 프린스턴에 갔을 때 도움받기도 하였다고 한답니다.
일부 다른 교수들과 달리 현역병으로 입대해서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것에 대해 굉장히 자부심이 있는 듯. 본인도 수업시간에 간간히 군대 이야기를 펼쳐 주고, 자신의 홈페이지에서도 군대에서 있었던 썰을 가끔씩 푼다. 은근히 군부심이 좀 있다. 그 때문인지 석사장교 같은 병역특례에 대해서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도 자신이 입대했어야 할 시절에 석사장교 제도가 있었다면 좋아라 써먹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건 함정이랍니다.
김태영 전 국방부장관과 서로 경기고등학교 동창이며 고3 때 같은 반이었다. 친구가 1군사령관으로 복무하던 시절, 부탁으로 특강을 하러 간 적이 있는데 별들이 많아서 놀랐답니다.
故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서울대 경제학과 선후배 관계로, 대학교 재학 당시 함께 농구를 하거나 독서 이야기를 나누던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김근태 장관의 사망 당일 그를 추모하는 글을 올렸는데, 따뜻하고 고결한 심성을 가진 선배였다고 회고했답니다.
시험도 교육의 일종이라 생각하기에 소위 족보를 싫어한다. 이 때문에 한번 출제한 시험문제를 파기한 적도 있답니다.
팬클럽이 존재하며 놀랍게도 팬클럽에 들어가기 위한 이준구고사라는 시험까지 존재한다고 한답니다.
여기에 김규리의 만능재주꾼 매력과 '야구계 관종' 유희관의 통통 튀는 예능감이 더해져 수요일 밤 안방에 재미를 안겨준 '라디오스타'는 동시간대 가구, 2049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지난 2022년 8월 17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기획 강영선/연출 이윤화)는 류승수, 김규리, 김호영, 유희관이 출연하는 '알아 두면 쓸 데 있는 신기한 잡학사전' 특집으로 꾸며졌답니다.
18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방송된 '라디오스타'는 5.8%(이하 수도권 기준)로 동시간대 가구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광고 관계자들의 주요 지표이자 채널 경쟁력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인 2049 시청률은 2.3%로 역시 1위를 기록했다.
최고의 1분은 '해박한 의학 잡지식을 지닌 류승수가 장인어른 목숨을 구한 장면'으로 가구 시청률 7.1%까지 치솟았다.
3년 만에 '라스'에 컴백한 류승수는 지난 출연 당시 화제를 모았던 '돈이 많았으면' 후폭풍을 전하며 "여전히 돈이 없다"라고 반전 고백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그는 땅꾼에 필적한 뱀 지식부터 장인어른 목숨을 구해낸 풍부한 의료 잡지식까지 뽐내며 잡학박사 면모를 드러냈다.
특히 검사 캐릭터를 연기한 경험을 살려 700만 원 도난사건 범인을 잡아낸 일화를 소개해 감탄을 자아냈답니다.
넓은 잡학지식을 자랑하던 류승수는 실제로 '불운의 아이콘'이라고 이와 얽힌 일화들을 들려줬다. 과거 야구 시구에 참여했다가 우천 취소됐다고 밝힌 그는 "홍성흔이 갑자기 아이스 버킷 한다고 나에게 아이스박스를 부었다. 심장마비가 왔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개봉을 앞둔 영화 '육사오'부터 '고지전'까지 주요 장면에서 통편집 굴욕을 겪었다고 해 이목을 집중시켰답니다.
또 류승수는 '슛돌이'에 출연한 지승준의 근황도 전했다. 그는 "처조카가 슛돌이에 나왔던 지승준이라는 친구다. 배우를 한다기에 제대로 하라고 연기를 가르치고 있다"며 "키가 180cm가 넘었다. PT를 받으면서 몸도 만들고 있다. 눈빛이 슬퍼서 강동원 느낌도 난다. 영어로 연기를 더 잘한다"라고 말해 시선을 끌었다.
김규리는 춤, 연기, 그림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뽐내는 멀티테이너 면모를 과시했다. 그는 박진영의 '음음음' 뮤비 출연 비화를 전하며 "춤 선생님이 비였다. 박진영보다 더 잘 췄다"라고 반전을 공개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댄스팀 '프렌즈' 출신 친언니와 매니저 영향으로 김종민과의 개인적인 인연이 있었다며 "삼겹살 집에서 일행까지 모조리 계산하고 나갔다. 이후 타 방송에서 나를 좋아했다고 이야기하더라"라고 밝혔답니다.
김규리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다친 귀가 악화된 아버지의 사연을 공개했다. 그는 삶의 의욕을 잃은 아버지를 즐겁게 하기 위해 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 함께 섰다고. 김규리는 "얼마 전 아버지가 위암 판정을 받았는데, 초기라서 시술을 받고 회복 단계다, 건강하실 때 춤을 함께 춰 보고 싶다"라고 효심을 드러냈답니다.
김호영은 지붕을 뚫는 하이텐션과 끼를 대방출하며 방송 내내 '라스' 4MC와 게스트들을 휘어잡았다. 특히 저텐션 류승수를 꼼짝 못하게 만든 손짓 인사법부터 요란한 홈쇼핑 팔이피플 변신까지 선보이는 등 스튜디오를 초토화시켰다. 김호영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든 류승수는 "김호영과 한 달 살기 가능하냐"라는 MC들의 물음에 "도전해보고 싶다"라고 답해 폭소를 유발했다.
김호영은 최근 대세로 떠오른 배우 박은빈 덕분에 15년 전 아역으로 동반출연했던 '태왕사신기'가 재조명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드라마 상에서 제가 짝사랑하는 역할이었는데, 가만히 있다가 계 탔다. 은빈아 고맙다"라고 윙크를 날려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또 김호영은 류승수, 유희관을 위해 시선 강탈하는 오즈의 마법사 패션룩을 추천해 웃음을 자아냈답니다.
슬로 볼로 한국 프로야구 통산 101승을 달성한 유희관은 지난 1월 은퇴 후 야구 해설활동 및 예능 출연 등 일주일 내내 바쁜 근황을 전했다. 이날 유희관은 예능 신생아 답지 않은 통통 튀는 예능감과 입담, 'Next Level' 댄스까지 망설임 없는 관종(?)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무장해제시켰다. 또 올라프부터 지니, 비와이, 홍현희까지 '유희관 닮은꼴'을 끊임없이 소환해 웃음을 안겼답니다.
유희관은 야구계 핵인싸답게 선수 시절 연예인 시구 지도를 전담했다고 털어놨다. 그중 고현정의 시구 지도를 했던 일화를 공개하며 "포스가 느껴져 말을 쉽게 걸지 못했다. 시구 끝난 뒤 기념사진에서 장난스러운 뽀뽀 포즈를 취하셨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라고 회상했다. 스타를 좋아하는 거 아니냐는 MC들의 질문에 유희관은 "스타 좋아한다. 오늘도 '라스' 나와서 봐서 좋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웃음을 더했답니다.
- 지난 2018년에 언론에 공개된 지승준의 모습
'슛돌이' 지승준의 근황이 '동상이몽2'에 출연한 이모 윤혜원으로 인해 화제를 모으고 있답니다.
지승준은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 출연 중인 배우 류승수의 아내 윤혜원의 조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 10일 방송분에서 윤혜원은 과거 친언니 윤효정 씨와 함께 쇼핑몰을 운영했다고 밝혔다. 류승수에 따르면 해당 쇼핑몰은 운영 당시 큰 인기를 모았다고.
이에 방송 후 쇼핑몰 이름과 지승준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 1999년생인 지승준은 2005년 방송된 KBS '해피선데이-날아라 슛돌이 1기'에서 골키퍼를 맡아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강동원 닮은 외모로 '리틀 강동원'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답니다.
지승준의 어머니는 팬카페와 SNS 등을 통해 아들의 팬들과 소통을 하고, 아들의 근황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에 지승준의 '폭풍성장'은 수시로 포털 사이트 검색어를 점령하며 큰 이슈가 되곤 했다. 지난 해 tvN '명단공개'에서도 지승준의 폭풍성장 근황을 다루기도.
지승준은 초등학교 졸업 후 2012년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고, 최근 대학생이 됐다. 지승준의 어머니는 지난 해 "아이가 성인이 됐는데 엄마가 아이 사진을 올릴 수는 없는 것 같다"라며 팬카페를 폐쇄했다. 하지만 올해 8월 개인 SNS를 개설해 훈남으로 성장한 지승준의 근황 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윤효정 씨는 은발 머리로 변신한 지승준의 사진을 공개하며 "정말 재미있게 대학 생활 중인 준. 젊음이 좋아. 은발머리 준"이라며 "내 짝사랑, 많이 컸죠?"라고 아들 자랑을 했다. 이 외에도 윤효정 씨는 가족이 출연한 '동상이몽2' 화면을 캡처한 뒤 "우리 아빠랑 아저씨들 넘 멋지게 나온다. 류서방 최고"라고 감상평을 전하기도 했답니다.
- 지난 2010년에 알려진 지승준의 아버지 부친 어머니 모친, 엄마 아빠 가족은 누구?
2005년 KBS2TV '날아라 FC슛돌이' 주장을 맡았던 꼬마 얼짱 지승준의 근황과 함께 가족사진도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지승준의 엄마 윤효정 씨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아들 지승준을 비롯해 남편과 찍은 사진들을 게재해 방문자수가 10만 가까이 되는 등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놀랄 만큼 멋지게 성장한 지승준과 패셔너블한 지승준 부모님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
사진 속에 지승준의 엄마, 아빠는 초등학생 부모님이라기보다 누나, 형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캐주얼한 복장과 포멀한 복장을 입은 모습에서 연예인 못지않을 정도의 분위기가 풍긴답니다.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지승준은 성숙해진 외모와 몰라보게 자란 키로 한결 남자다운 면모를 갖췄다. 쇼핑몰을 운영하는 엄마의 영향인지 또래 아이들에 비해 눈에 띄는 패션 감각도 여전했다.
- 날아라 슛돌이는 어떤 프로그램???
KBS 2TV 및 KBS N 스포츠에서 2005년 ~ 2009년에 방영되었던 예능 프로그램이랍니다.
1기는 KBS 2TV의 예능프로그램 해피 선데이의 한 코너로, 2기부터는 독립 프로그램으로 KBS N 스포츠에서 방영되었다.
기본적인 컨셉은 7세 미만의 미취학 아동들이 모여 FC 슛돌이라는 이름의 축구팀을 구성하여 축구를 배우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보여주는 프로그램. 원래 미숙한 아이들에 감독도 비전문적인 지도자(김종국, 전진)가 만나서 꼴찌들의 도전 컨셉으로 시작한 것으로 보이지만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점점 아이들의 축구 실력도 늘어나고 감독도 국가대표 출신을 모셔오게 된답니다.
초창기에는 축구 못하는 아이들이 경기에서 어이없는 실수도 하고 그러는 게 귀엽고 그러면서도 점점 커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었지만 시즌이 거듭될수록 처음부터 공 잘 차는 아이들을 모아놓다 보니 그런 재미가 사라져서 아쉬워하는 팬들도 많답니다.
2002 월드컵으로 인해 축구인기가 급증한 데 이어 이 프로가 인기를 끌면서 당시 10세 미만 어린이들 사이에 축구배우기 붐이 일었고, 엄마들 사이에서도 아들을 축구교실에 보내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는 유소년 축구 붐으로 이어졌고 현재까지 축구계에 영향을 많이 끼치고 있다.
슛돌이의 구장은 3기 기준, 파주 체인지업 캠퍼스 내 구장으로 알려져 있다.
- 과거 기수 일람
- 1기
2005년 10월 23일 ~ 2006년 7월 30일 감독: 김종국-전진 코치: 신정환-김종민 매니저: 이연두 선수: 지승준(주장), 조민호, 진현우, 오지우 ,최성우, 이승권, 이현준, 김태훈, 김태수
재미로만 따지면 날아라 슛돌이 최고의 시즌. 일단 예능계에서 신선한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기본 흥행은 깔고 들어간 데다 아이들 외모가 다들 반반하거나 귀여웠기 때문에 방영 초기부터 초미의 관심을 모았답니다.
선수들을 선발하고 첫 경기를 차범근축구교실과 가졌는데 FC 슛돌이가 0-21로 완패했다. 말할 필요가 없는 흑역사 경기.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이 엄마 품에 안겨 우는 장면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지승준 군은 GK라 자책이 컸는지 혼자 떨어져 나와서 울고 말았다. 이렇게 축구 못하는 꼴찌팀 컨셉을 반강제로 확립하고 매 경기 유소년축구계의 강팀들과 상대하며 맨날 깨진다. 창단 후 첫 승을 거두기까지 5개월이 걸렸습니다
곱게 잘 자란 지승준의 근황이 종영 몇 년 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6년 3월을 기해 멤버 전원이 고등학생이 되었답니다.
1기 매니저로 얼굴을 알린 이연두는 훗날 축구선수 김정우와 열애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으며 현재는 결별 상태랍니다.
2008년 5월 1기와 4기의 올스타전에 지승준을 비롯해 김태훈 진현우 조민호 김태수 오지우 등이 출연했다.
2006년 7월 종영 후 약 2년이 지난 2008년 12월 7일 KBS2 불후의 명곡 김종국 편에 진현우를 제외한 전 멤버가 깜짝 출연했다. 3분 4초부터
후일담으로 당시 성남시에 거주했고 가족 전체가 성남 일화 천마의 팬이며 본인도 성남 유니폼을 입고 출연했었던 조민호는 유소년 선수로 중랑FC U18에서 활동했으나 현재는 축구를 그만둔 후 체대에 입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인터뷰를통해 “선수 생활을 그만뒀지만 최근에 대한축구협회 지도자 D급 과정을 수료했다”는 소식을 알리며 앞으로 아이들을 위한 체육 지도자의 꿈을 꾸고 있다는 계획을 전했답니다.
FC 서울팬으로 나왔던 김태훈은 울산 유스 소속으로 뛰다가 고교 진학을 앞두고 일본의 고마자와 대학 부속 도마코마이 고등학교로 소속을 옮겼고, 고교 졸업 후 축구 특기생으로 이시카와현 호쿠리쿠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 축구부에서 꿈을 이뤄나가고 있다는 근황이 전해졌다. 그리고 2019년 4월 20일 개인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아 군 입대를 한 듯 하답니다.
김태훈 못지 않은 실력으로 인기를 모았던 김태수는 거주지가 제주도라는 여건상 축구를 그만두었으나 지인의 말에 따르면 공부를 잘해서 자사고로 진학 후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000년생 라인 이승권, 최성우, 진현우(빠른00)와 여자 선수 오지우는 슛돌이 활동이 끝난 후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갔다. 진현우의 경우 2015년에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에 출연하며 고양국제고등학교 재학생임이 알려졌다. 오지우의 인스타그램에 따르면 1기 멤버인 진현우, 김태훈하고 찍은 사진이 올라온 것으로 지금도 1기 멤버들과 연락하고 지낸다고 한답니다.
2020년 9월 2일 방영된 유 퀴즈 온 더 블럭 70회에 오지우와 진현우가 출연했다. 오지우가 김태훈의 근황을 공개 했는데, 일본에서 축구를 하다 지금은 군복무 중이라고 하였다. 더불어서 오지우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에 재학중이고 진현우는 서울교육대학교에 재학 중이라고 말했답니다.
최근에 지승준이 근황이 알려졌는데 배우를 준비중 이라고 한답니다.
KBS HUMAN 뭉클티비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1편씩 올라온답ㄴ다.
- 슛돌이 드림팀
감독: 유상철 코치: 김종민 매니저: 신지 선수: 조민호, 김태훈, 김태수, 조형호, 임원준, 주휘민, 승준수 2006년 8월 6일 ~ 2006년 9월 3일 2009년 2월 1일 ~ 2009년 3월 22일
1.5기 격으로 한 달 정도 방영되었다. 시즌 1에서 FC 슛돌이가 상대한 강팀들에서 에이스들만 선발해서 꾸린 말 그대로 드림팀이랍니다.
드림팀답게 KBS에서 통 크게 영국 여행을 보내줘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명문구단들의 유스팀들과 상대했다. 토트넘 핫스퍼, 레딩 FC 등.
이 때 멤버 중 주휘민이 수원에 스카우트되어 수원 유스 소속으로 성장중이다. KFA에서 진행하는 골든에이지 제도로 인해 연령별 대표팀에도 승선한 바 있다. 슛돌이 출신으론 최초랍니다.
인지도가 두번째로 많은 3기는 이강인의, 이강인에 의한, 이강인을 위한 팀이었다고 해도 될 듯. 이 때부터 FC 슛돌이의 전력이 확 뛰기 시작했다. 지금도 이강인으로 검색하면 슛돌이 이강인 스페셜 같은 제목의 동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적이 20승 4패로 패배 2번은 차범근 축구교실과 평균연령 2살 더 많은 팀에게만 졌을 뿐이랍니다.
이강인은 슛돌이 출연 이후에도 각 연령대를 씹어먹더니 결국 스페인 발렌시아 CF 유스팀에 입단했다. 한국에서만 잘하는 건가 했더니 스페인 가서도 메시놀이를 했답니다.
2017년 12월 21일(현지 시간) 레알 사라고사와의 경기에서 발렌시아 메스타야(발렌시아 CF 2군) 소속으로 프로 데뷔를 하고, 이듬해 1군팀인 발렌시아 CF에서도 8월 12일 프리시즌 레버쿠젠과의 친선 경기에 후반 교체 출장, 10월 31일에 코파 델 레이 CD에브로 전에서 선발 출장을 하는 등 1군 데뷔까지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리고 마침내 다음해인 2019년 1월 30일, 만 17세의 나이로 등번호 16번을 부여받으며 발렌시아 1군 정식 승격을 이뤄냈다. 그야말로 슛돌이가 낳은 최고의 아웃풋. 슛돌이가 방영하던 당시만 해도 제2의 박주영이 된다는 수준의 기대를 거는 정도가 대부분이었지만, 현 시점에선 대한민국에서 드디어 박지성, 기성용조차 넘어서는 월드클래스 미드필더가 등장하게 되는 거 아니냐는 기대를 받고 있는 수준이랍니다.
서요셉도 세트로 발렌시아에 간다는 설이 있었으나 한국에 남아 있다. 초등부에서 4학년 때부터 5, 6학년 형들을 제치고 주전을 먹는 등 이쪽도 대형 유망주가 될 조짐이 보이고 있답니다.
이후 서요셉은 FC서울 U-18팀인 서울오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FC서울의 우선지명을 받고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하여 미드필더로 뛰고 있고, 같은 멤버였던 김성민도 오산고 졸업 후 FC서울의 우선지명을 받고 안익수 감독이 지휘하는 선문대학교에 진학하여 뛰고 있다. 이태석도 오산고에서 뛰고 있다. 슛돌이 수집중인가? 특히 이태석은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어, 2019 FIFA U-17 월드컵 브라질에도 참가하여 팀의 8강행에 큰 보탬이 되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 2021년 FC 서울에 입단하였다.
2011년 1월 3일 KBS 2TV 에서 월, 수, 금에 시합판, 특별판, 미션판을 방영했답니다.
2019 FIFA U-20 월드컵 폴란드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4강에 오르자 KBS N 스포츠는 기다렸다는 듯이 2019년 6월 10일부터 오전 10시~정오 시간대에 3기를 재방송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도 스폐셜 영상을 주야장천 올리고 있다. 그리고 특별판, 미션판도 방송이 될 예정이랍니다.
사족으로 1기 멤버중 일부가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지내는 것처럼, 3기 멤버들도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만나고 지내고 있다고 한다. 신재유가 성인이 되고나서 심민 매니저와 슛돌이 멤버랑 같이 만나서 놀았다고 인스타그램에 올렸답니다
- 4기
감독: 유상철 코치: 김병만[19]-이정(3기 이후 4기 17.18화 부터 복귀 했다가 4기 22.23회 다시 하차) 매니저: 남보라 캐스터: 이병진, 최승돈 선수: 이태석(주장), 김산, 변준석, 오우빈, 박에드워드, 김동건, 김대현, 김동성, 김진원, 고가현
출연하는 모든 선수가 전부 동갑인 유일한 기수. 4기 때부터 급격히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답니다.
축구적인 요소보다는 예능적인 면에 중점을 뒀으며 당시 전성기였던 김종국의 출연과 지승준, 조민호 같이 선수들의 외모가 귀여워 화제를 모았던 1기, 비록 개편과 동시에 지상파에서 케이블로 옮겨졌지만 지상파에서 방영한 초창기 때의 다져진 팬덤과 1기의 후광으로 나름 인기가 있었던 2기, 이강인의 의해서 화제를 모았던 3기에 비해서 4기는 인기를 끌 요소가 적었으며 하필이면 워낙에 실력이 좋았던 3기의 다음 기수인지라 3기를 제외하면 가장 좋은 성적을 냈음에도 묻혔답니다.
슛돌이의 5기로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던 4기가 그래도 몇건의 기사도 나는 등 어느 정도 관심을 받았던 반면에 5기는 아예 어떠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를 못했다. 더군다나 지금도 유*브에서 다시 볼 수 있는 다른 기수와는 달리 저작권 문제로 다시보기는커녕 영상을 구할 수도 없는 5기의 인지도는 더더욱 시망급이랍니다.
5기를 끝으로 슛돌이의 여섯번째 시리즈가 제작되기까지 5년간의 공백이 있었답니다.
사실 슛돌이는 지상파인 KBS 2TV에서 케이블인 KBS N SPORTS로 옮긴 이후로 줄곧 시청률이 안습이었으며 이는 이강인이 출연한 3기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새로운 시즌을 제작할 때마다 제작비에도 많은 부담이 있어서 오래 방영하기가 힘들었다. KBS 2TV에서 2012년에 재방영이 되었답니다.
5년만에 부활해서 2014년 5월 5일에 첫 방송되었으며 체조선수 신수지가 매니저로 섭외되었다. 여담으로 비운의 슛돌이가 되어버린 것이 월드컵이 다가왔다고 급하게 한 면이 있었는지 아니면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의 한국 국가대표의 참담한 성적의 여파였는지 역대 슛돌이들 중에서 드림팀을 제외하고 가장 짧은 방영 기간의 슛돌이가 되었답니다.
- 7기: 날아라 슛돌이 - 뉴 비기닝
감독: 이영표 코치: 김종국, 양세찬 선수: 김지원, 이정원, 전하겸, 변지훈, 이우종, 박서진, 이경주(여자 선수), 성현석 스페셜 감독: 이동국, 박주호, 김재환, 알베르토 몬디, 안정환 한국방송공사에서 '날아라 슛돌이 - 뉴 비기닝'이라는 이름으로 7기 제작을 발표했으며 2020년 1월 7일부터 7월 13일까지 방영되었다.
엄홍길은 10월 6일 방송된 SBS '배기완 최영아 조형기의 좋은아침'(이하 좋은아침)을 통해 김제동과 함께 등산을 다녀온 후 김제동과 제작진을 집으로 초대했다.
엄홍길 집은 들어서자마자 넓은 마당과 대청마루가 눈에 띄었다. 엄홍길은 집에는 많은 액자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엄홍길은 "제가 16좌 완등한 산 중에서 가장 많은 실패와 사고가 있었고 동료까지 잃었던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산 안나푸르나 산입니다"고 집에 걸린 그림을 설명했다. 엄홍길은 집에 있는 그림을 산악용 밧줄로 묶어둬 눈길을 끌었답니다.
엄홍길 집은 일반 가정집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소품들이 가득차 있었다. 엄홍길은 여행을 가거나 등반을 가면 항상 거북이, 코끼리 소품을 사왔다고 말했답니다.
엄홍길 집에는 여기저기 정체 모를 천이 묶여 있었다. 엄홍길은 "히말라야 등반 갔을때 현지 산악 안내인들이 준거다"고 밝혔다. 엄홍길 서재는 베이스캠프를 방불케 하는 등산 용품들로 가득차 있었답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 엄홍길은 김제동, 김세환과 함께 등산을 하는가 하면 아내 이순래 씨, 아들 엄현식 군, 딸 엄지은 양을 소개했습니다.
- 프로필 이력 경력
출생,나이 1960년 9월 14일 (61세) 고향 출생지 경상남도 고성군
신체 키 167cm, 66kg
학력 호암초등학교 (졸업) 의정부중학교 (졸업) 동두천중앙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학사)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학 / 석사)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체육학 / 석사)
병역 군대 대한민국 해군 특수전전단(UDT) 병장 전역 종교 불교
가족관계 배우자(부인 아내 와이프) 임순래, 슬하 1남 1녀 직업 산악인
소속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
대한민국의 산악인. 경상남도 고성군 출신이지만 3살 때 경기도 의정부시로 이사가서 원도봉산에서 성장했답니다.
그의 생애와 과거
1988년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2001년에 한국에서 두번째[3]이자 세계 8번째로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를 완등했다. 그리고 다른 8,000m급 위성봉인 얄룽캉과 로체샤르를 등정하여 16좌 등정에 성공한 대한민국과 세계 산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랍니다.
다만 엄홍길의 시샤팡마 등정은 1993년에 이루어졌으나 등정 실패 의혹으로 인정 받지 못한 탓에 논란을 불러왔으나, 히말라얀 데이터베이스의 국제 공인 기록인 2001년의 재등정을 인정받으면서 마무리되었다. 아무래도 시샤팡마는 중국 영토로 완전히 들어간 터라 조작 의혹도 가능한 반면에 중국이 텃세를 부리기도 쉬운 까닭도 있다. 당장 위키백과 한국어판에 보면, 14좌 완정 의혹에 있는 이들 중에는 시샤팡마 등정 관련으로 들어간 이들이 4명 중 2명이랍니다.
대한민국에서 산악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로서, 16좌 등정 이후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16좌의 마지막 고비였던 로체샤르 등정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산악인으로서의 삶과 도전 정신 등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평소에 무릎팍도사를 보지 않던 사람들도 '엄홍길이 나오니까 한 번 볼까'해서 본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간 수많은 강연과 방송 출연을 해왔지만 무릎팍도사라는 예능 프로에 나오게 된 이유는, 산에 관련된 에피소드나 인생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예능 프로그램이라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답니다.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로체샤르가 지금까지 오른 산 중에 제일 힘들었다고 말하며, 다른 산은 보면 볼수록 익숙해지고 정이 가는데, 로체샤르만큼은 정나미가 떨어진다고(...) 로체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엄홍길 대장이 오른 루트가 수직 빙벽이 3,500m로 꽂혀있는 로체샤르랍니다.
다만 여기서 짚고 넘고 넘어갈 부분이 있는데 도올 김용옥은 인터뷰에서 '인간으로서 어느 누구도 16좌의 전설을 달성치 못했다. 그런데 엄홍길은 이 전설에 도전장을 냈다.'라는 말로 시작하고 엄홍길은 "천지신명의 도움으로 마지막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계최초 16좌 등정의 위업 달성'은 마치 '전 세계의 산악인이 앞다퉈 경쟁하였음에도 엄홍길이 최초로 달성했다'는 뉘앙스를 주어 논란의 소지가 있답니다
지구상에 8,000m가 넘는 봉우리는 14개도, 16개도 아닌 20여개 쯤 있는데 이 중 우뚝 솟은 핵심 봉 14개를 산악인들이 8,000m 14좌라 불러왔고 이는 세계적으로도 공인된 봉우리이다. 그러나 위성봉인 얄룽캉, 로체샤르는 독립성이 강할 뿐 14좌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히말라야 14좌 최초 등반가인 라인홀드 메스너를 비롯해 예지 쿠쿠치카, 에르하르트 로레탄까지 이미 전설이 된 그 어느 누구도 16좌 완등을 이루기는 커녕 시도조차 한 적이 없답니다.
물론 히말라야 16좌 등반은 그 자체로 사실이고 또 대단한 업적이기도 하며 적어도 이 사실 자체는 폄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국내에서만 적용되는 독특한 기준으로 다른 국내 산악인들이 "왜 당신은 16좌 등반을 못 했느냐"는 질문에 곤혹스러워하고 실제 박영석, 한왕용, 김재수, 김창호 등 14좌 완등한 이들이 스폰서를 받기가 더욱 어려워진 것은 문제가 있다. (이들 중에는 "뒤통수를 맞았다"며 섭섭해한 이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못 한 것이 아니라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더 큰 문제는 이를 영화화한 히말라야(영화)가 '실화'를 표방하는 점에 있는데 해외로도 수출되기도 한 이 영화가 자칫 해외에서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가 한 인터뷰 기사에는 인터뷰어가 '진정한 히말라야 완등은 16좌가 되어야 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쓴 문장이 있는데 이런 부분을 왜 바로 잡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다. 그도 그런 것이 히말라야에는 공인된 14좌 혹은 8,000m가 넘는 20여개의 봉우리가 있을 뿐 16좌라는 말 자체가 없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엄홍길도 14+2좌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입장 바꾸어 생각해보면 14좌를 완등한 옆나라 일본 등반가가 옆의 위성봉 4개 정도 더 오른 뒤에 '어느 누구도 못한 전세계 최초 18좌 완등 위업 달성'이라고 한다면 그 자체는 사실이지만 이것이 다른 등반가들이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일본 등반가가 최초로 이루어낸 것으로 해석된다면 당연히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답니다.
게다가 이미 수많은 루트가 개척되어 수많은 14좌 완등을 이룩한 현재의 산악계에서는, 14좌 완등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않고 큰 업적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K2의 서벽을 개척한 소위 러시아의 괴물들 중 14좌 완등자는 한 명도 없고 안나푸르나 남벽을 단독으로 개척등반한 율리스텍 또한 14좌를 다 완등하지는 못했고 윈터 마에스트로라 불리며 현재 동계초등 4회로 공동 1위에 올라있는 시모네 모로 역시 14좌를 오르진 않았답니다.
사실 세계에는 8,000m급 이상의 위성봉을 수차례 등정한 인물들이 꽤 있다. 다시말해, 16좌 이상을 오른 산악인들도 꽤나 존재한다는 소리. 하지만 14좌 외에는 공식적인 기록으로 인정받지 않는데다, 기록적인 의미없이 개인적인 성취감에 의미를 두고 등반한 경우가 많다보니 14좌 이상의 기록은 산악인 스스로도 홍보하지 않는다. 하지만 엄홍길은 산악에 대해 무지한 한국에 '16좌'라는 자극적인 타이틀로 본인을 홍보한 것이랍니다.
엄홍길의 이런 상업주의적 기록주의에 비판이 될 수 밖에 없는 점은, 산악과 등반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오로지 기록만으로 자신을 남겨서, 다른 순수한 등반인들이 상대적으로 등반 자체에 대해 가치를 폄훼받게 한는다는 점이다. 실제 한국 산악계, 더 나아가 해외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들은 엄홍길이나 박영석 같은 사람들이 전혀 아니다. 유학재, 박정헌, 정승권, 최석문, 김창호, 임덕용, 남선우와 같이 신루트 개척, 초등, 단독 등반, 동계 등반의 기록을 남긴 등반가들이다. 하지만 '16좌' 같이 자극적이고 상업적이며 마케팅만을 앞세운 기록 앞에 국내에서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는 생각해볼 문제이랍니다.
대한민국 해군 출신, 그것도 UDT 출신이라는 이색적인 경력으로도 화제가 된 산악인. 산에 오르던 그는 넓은 바다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1981년 해군신병 224기 수병으로 입대했으며, 갑판병이 되어 함정 근무를 하다가, 타던 경비정이 화재로 퇴역 처리된 뒤 퇴역함 관리병이 되자 이를 지루하게 느껴 UDT에 지원하게 되었다. UDT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경험한 군생활이 훗날 히말라야를 오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군 시절 경주시 감포에서 독도까지 5박 6일동안 수영해서 가기도 했다고 한다(...)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2010년 KBS 병영체험 프로그램에서 모군인 UDT를 다시 찾기도 했답니다.
산악인으로서 그의 마인드는, 산을 오를 때에 산이 잠시 정상을 빌려주는 것일 뿐 산을 정복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산이 허락해 주지 않으면 자기가 아무리 경험이 많은 산악인이라도 정상에 오르는 건 불가능하다고. 흔히들 신의 영역이라 부르는 8,000m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자연의 섭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자신을 낮추고 겸허한 자세로 산을 오르게 된다고 한답니다.
더불어 산에 오르다보니 언제라도 죽을 각오를 해서 2013년 3월 4일 TV에 나와 미리 쓴 유서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후배이던 박영석(1963~2011), 박무택, 백준호, 장민, 지현옥같은 등산가들이나 친하게 지내던 셰르파들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걸 하도 많이 봤으며, 자신도 죽을 고비를 많이 겪다보니 이런 유서 작성은 당연했을 것이랍니다.
아이스 에이지 2에서 딱정벌레 아빠 역으로 더빙을 맡기도 했다. 참고로 여기에 조오련, 하일성 같은 다른 스포츠 분야 전문가들도 같이 더빙을 맡았답니다.
16좌를 제패한 이후에는 8,000m 고산에는 오르지 않고 있으며 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딴 엄홍길 재단의 일에 집중하고 있다. 안나푸르나 등정 당시 모든 것을 베풀며 살 것을 다짐했다고 하며, 네팔에 학교를 지으면서 이 맹세를 지키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17개의 학교를 세웠으며, 1986년도에 사망한 셰르파 동료의 사망 후 유족들을 찾아갔더니 너무나 어럽게 살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 후손들이 아버지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도록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학교의 보건 교사가 되거나 새로운 학교를 세우는 건설현장의 현장 소장이 되기도 했답니다.
그의 책을 보면 요즘 기후 변화(지구 온난화)가 에베레스트나 히말라야에서도 뼈 저리게 알 수 있을 정도라는 걱정이 나온다. 1980년대만 해도 히말라야의 산들은 날씨가 나빠도 사흘 정도만 마을에서 쉬면 날씨가 좋아졌지만, 2000년대에 와선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산 곳곳에 눈이 많이 녹은 게 갈수록 늘고 있다면서, 산마을에서도 차와 첨단장비로 편하게 지내고, 갈수록 자연이 오염되고 있는데 머지않아 히말라야 산들에 눈이 남아있긴 할까 걱정이 된다고 회고했답니다.
2015년 네팔 대지진 때, 지인들과 함께 네팔에 구호 활동을 위한 자원 봉사를 하러 갔다. 네팔에 대하여 애정이 각별하다고 밝혔는데 그럴 만한 게 네팔에 초등학교도 세워주고 친구들도[10] 많다고 했다. 후배 산악인들에게 네팔 사람들을 무시하면 내가 가만 안 둔다고 엄격한 충고를 할 정도로 네팔은 제2의 조국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만큼 이 지진 여파가 남일이 아니었으리라.
2015년 12월 16일 개봉한 히말라야에서 황정민이 연기했답니다.
2016년에는 바둑기사 조훈현 九단과 엄홍길 대장에게 새누리당에서 비례대표를 제안했다는 기사가 등장했다. 처음 보도된 당시에는 엄홍길 대장이 입당을 고려하는 중이라는 기사가 났었으나 후에 엄홍길 대장이 지인에게 입당제의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완곡한 거절의 의사로 생각해보겠다고 말을 했는데 이를 언론에 보도해서 당황스럽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또한 "지금은 정치에 생각이 없다. 히말라야와의 약속을 먼저 지켜야 한다"며 입당을 확실하게 거절한다는 내용으로 다시 인터뷰한 기사가 올라오면서 정치계 진출 소동이 일단락 되었답니다
21대 총선에서는 미래통합당 소속의 나경원 지지유세를 했다. '나경원 후보 지원유세 참석한 엄홍길' 나경원 외에 황보승희와 박종진 등 미래통합당 후보들의 지지유세를 했다. 위에 언급했듯이 2016년에는 민주당 후보 지원유세를 해준 것을 보면 특정 당을 민다기 보다는 그냥 인맥 따라 지원유세를 해주는 스타일이랍니다.